정년은 개인과 사회의 대립에서 타협의 산물이다. 강자의 욕심에 대한 억제선이면서 약자에겐 기회를 더 주는 효과도 있다. 근대국가 이후 중산층이 두터워진 것도 정년제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공직의 경우 종종 정년은 임기라는 형태로 변형된다. 선출 권력은 그렇게 통제된다. 반대로 공직의 임기 보장은 더 센 권력으로부터 보호장치도 된다. 그래서 임기의 유무는 권력 분점의 평가 기준도 된다.
5년 단임제에서 대통령직의 정년이 확인된다. 시대 변화에 따라 대통령직의 이 정년도 조정될 수 있지만, 쉽지 않다. 헌법 개정 사항이다. 단 5년으로 정책의 성과도 내고 좋은 제도의 씨도 서둘러 뿌린 뒤 은퇴해야만 한다. 6년인 대법원장 역시 연임 불가다. 대법원장에 70세 은퇴 규정까지 둔 걸 보면 국회와 행정부 간섭은 배제하되 정신의 건강을 중시한 것 같다. 공직의 임기, 즉 정무직 정년은 국가 운영에서 다양한 시행착오의 결과이면서 정치적 타협물일 테지만 나름의 로직도 갖는다.
4년 한번이면 역량 충분히 발휘
국회의원은 어떤가. 300명이 저마다 헌법기관이라며 저토록 힘주는 국회말이다. 임기 4년은 분명한데 현실적 정년은 아니다. 대통령처럼 단임 규정도, 대법원장과 대법관처럼 70세라는 연령 정년도 없다. 정년에서도 역시 국회다. 문제는 여야 할 것 없이 ‘노인정치’의 폐단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이다. 의원 정년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노인정치란 절대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다선 혹은 소위 중진이라는 ‘직업 국회의원’들이 보여주는 퇴행정치라는 점부터 분명히 해두자.
대학교수에 맞춰 65세로, 양보해도 대법원장처럼 70세로 국회법에 정년을 못 박자고 제안하고 싶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 국회선진화법 개정의 딜레마처럼 이 법 또한 국회에 달렸다. 사실 국회개혁의 과제는 너무도 많다. 중범법자의 재취업이 정말 용이한 곳도 국회다. 19대에도 득실거린다. 강력한 자격 심사도 시급하다.
총선서 유권자가 '단임 정년' 심판
4월 선거에서 일단 국회의원 정년부터 적용해보자. 방법은 하나, 의외로 쉽다. 법보다 투표다. 유권자들이 원칙적으로 4년 단임으로 정년을 적용해 나가면 어떨까. 대통령직도 5년에 건다. 4년이면 능력 발휘에 부족하지 않다. 매우 이례적으로 잘하는 의원에 한해 4년만 정년을 연장해주자. 그 비율이 20% 안쪽이면 좋겠다. 그러고도 건전 입법, 정당한 행정부 감시, 사법부 견제의 본분을 다하는 깨끗한 인사를 고르고 골라 4년 더 봉사할 기회를 주자. 3선도 정원의 10% 미만이 좋다. 갈수록 엄격한 검증을 통과한 소수가 정당의 리더나 의장단이 되게 하자. 국회에 원로가 없고 중진은 조폭 중간보스처럼 된 것도 정년 부재의 정치흥신소로 전락한 탓이다. 4년 임기를 정년으로 삼자는 것은 인적 쇄신으로 저급한 국회를 확 바꿔보자는 호소다.
비례대표를 사고팔던 때 어느 정파 보스가 이렇게 말했다. “4년간 여의도에서 최고급 사무실 그냥 쓰며 세비 받고, 비서는 또 몇이냐. 공천비 20억원은 싼 것 아니냐?” 4급, 5급 두 명씩 일곱 명의 비서에 유급 인턴도 둘이다. 본인 급여 1억4000만원까지 의원당 인건비만 매년 6억원이다. 4년간 차량 유지비 7000만원에 별도의 택시비, 정책홍보비 2000만원 등등이 추가된다. 온갖 특권에 정년도 없다? 가성비만 높다면 더한 대우인들 문제랴만 현실은 반대다. ‘의원 정년 혁명’의 기회가 왔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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