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포드 지음 / 이창희 옮김/ 세종서적/ 480쪽/ 2만원
물리법칙 찾는 프로그램 등장…몇 시간 만에 뉴턴 원리 알아내
과학자·법률가·약사 등 전문직…미래에는 AI가 대체할 수도
인간보다 우월한 로봇 나오는데 낙관론만 강조하는 건 위험
[ 김보영 기자 ]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인간 최고수’ 이세돌 9단의 5번기를 지켜본 사람 중 상당수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알파고가 이 9단을 4 대 1로 이겼다는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컴퓨터 주제에’ 대국마다 창의적인 수를 선보이는 등 인간처럼 굴어서였다. 알파고는 순간마다 최적의 자리에 돌을 두는 일관된 행동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숱한 새로운 착점을 찾아냈다. 창의적 행동에 따르는 감정 변화, 기쁨과 뿌듯함 등을 알파고가 느끼지는 못했겠지만 어쨌든 없던 것을 찾아냈다. 창의력의 사전적 정의는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능력이다.
기술에 대해 퍼져 있는 대표적 오해 중 하나는 컴퓨터가 반복 작업에 능하다는 것이다. 특정하게 프로그램된 작업만 할 수 있는 아둔한 존재라는 착각이다. 그런 컴퓨터 시대는 이미 지나갔음을 알파고가 똑똑히 일깨웠다. 오늘날의 컴퓨터는 데이터가 주어지면 인간처럼 분석한다. 통계적 유의성을 찾아내고 스스로 프로그램을 다시 작성한다.《로봇의 부상》은 인간을 닮고, 인간보다 나은 컴퓨터가 등장하는 시대에 인간 생존법을 고민하는 책이다.
정보기술(IT)의 특징은 범용성이다. 과거에는 한 산업이 저물면 다른 산업이 부상해 노동자가 일터를 옮겼다. 오늘날은 의학, 교육, 제조 등 다방면에 IT가 파고들면서 모든 산업의 노동집약도가 줄어드는 추세다. 고용인력의 감소는 IT산업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구글은 2012년 약 3만8000명의 종업원으로 14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자동차업계 고용이 최고에 달한 1979년 GM은 84만명의 종업원으로 35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2012년 110억달러에 해당한다.
‘반복적’이라는 수식어는 기술로 인해 대체될 직업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적합한 수식어는 ‘예측 가능한’이다. 누군가 어떤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고, 그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면 컴퓨터는 기록을 분석한 뒤 작업 수행 방법을 분석하고 모방해 발전시킬 수 있다. 법률가와 과학자, 언론인과 약사 등 전문 직이자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많은 업무가 여기에 포함된다. 사람의 직업은 대부분 근본적으로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해서다.
‘유레카(Eureqa)’는 물리법칙을 직접 탐구해 찾는 프로그램이다. 코넬대 연구자 호드 립슨과 마이클 슈밋은 2009년 소프트웨어에 반복적으로 진자를 출발시켜 이로 얻는 운동 데이터를 분석, 진자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학 방정식을 찾도록 했다. 소프트웨어는 매번 분석 결과에 따라 진자를 놓는 지점을 스 볜?결정했다. 무작위로 선정한 지점이 아니라 법칙을 찾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지점에서 진자의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겨우 몇 시간 만에 뉴턴의 운동 제2법칙과 진자의 운동 관련 물리법칙 몇 가지를 찾아냈다.
무수한 복제가 가능한 소프트웨어 앞에서는 비교우위론도 무너진다. 지능을 복제할 수 있다면 기회비용 개념은 완전히 뒤집힌다. ‘총체적 지능’ 측면에서 컴퓨터는 인간에 훨씬 못 미칠지도 모르지만 경제발전이 그간 ‘분업’에 크게 의존해왔기 때문에 직업상 특화가 진행된 분야는 자동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이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등 ‘올바른 일’을 해도 다가올 새 시대에는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기 힘들게 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25년간 일한 저자 마틴 포드의 가장 큰 미덕은 미래를 장밋빛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IT산업 최전선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AI와 자동화에 대해 낙관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낙관론자는 디지털 경제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과 관련있는 AI 기업이 역풍을 맞을 위험을 고려해 겸손하게 얘기할 가능성도 있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도 대국이 끝난 뒤 “바람직한 방향으로 적용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말만 강조했다.
낙관론자가 주장하는 인간과 기계의 협력에 대해 저자는 냉소적이다. 인간과 기계의 협력을 떠올릴 때 사람이 주도권을 잡는 상황을 가정하면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甄?결코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언 에어즈 예일대 교수는 저서 《슈퍼크런처(2007년)》에서 알고리즘을 이용한 처리 방식이 인간 전문가보다 좋은 성과를 올린다는 다수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포드는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에게 작업 과정 전체를 통제하도록 하면 결과는 예외 없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커트 보니것의 공상과학(SF)소설 《자동 피아노(Player Piano)》가 그리는 미래는 음울하다. 소수의 엘리트가 자동화된 경제를 운영하고 인구의 대다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무의미한 생활을 이어간다는 디스토피아적 줄거리다. 저자는 “기존의 안일한 사고에서 벗어나 로봇과 인공지능이 불러오는 미래를 심도있게 논의하고 대처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우리 자신과 다음 세대를 위해 현명한 길을 찾아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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