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재산을 공개하는 1급 이상 중앙·지방정부 고위공무원들은 1813명에 달합니다. 국회와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합치면 2328명에 이릅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이들의 재산 내역이 담긴 관보를 일일이 들여다보는 것은 정말 고역입니다. 정기 재산공개를 실시하는 매년 3월 말만 되면 인사처 출입기자들이 바빠지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작년에는 업무가 한결 쉬웠습니다. 왜일까요. 재산공개 업무를 담당하는 인사처 공무원들이 재산 내역이 담긴 내용을 엑셀로 작성했기 때문입니다. 엑셀로 자료를 만들면 필터링 및 데이터 정렬 기능 등을 통해 누가 재산이 가장 많고 적은지, 어느 기관의 평균 재산이 많고 적은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담당 공무원 입장에서도 엑셀로 자료를 만들면 한눈에 오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24일 기자들은 엑셀 자료를 만들지 않았다는 인사처 담당 공무원의 청천벽력같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오직 수천장에 이르는 PDF 파일만 기자들에게 전달됐습니다. 엑셀 자료가 없으면 米?분석에 수십배의 시간이 더 소요될 수밖에 없죠.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를 심층 분석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하는 기자들 입장에선 곤란할 수밖에 없죠.
엑셀자료를 만들지 않은 이유를 묻자, 되레 “기자들이 그 자료가 왜 필요하냐”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인사처 대변인실 관계자는 “담당부서 직원들이 지난해 대부분 바뀌면서 전임자로부터 이런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해당 부서 직원들이 언론 보도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다보니 발생한 일”이라고 사과했습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이런 게 바로 순환보직의 폐해”라고 지적했습니다.
엑셀 자료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 자체는 사소한 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또 반드시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번 엑셀 사건은 그동안 공직사회의 폐해로 지적돼 온 순환보직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과연 내년에는 재산 내역이 담긴 엑셀 자료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끝)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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