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를 쓰면서 진화한 인간본능…드론이 전투기 조종사 대체하고
미래에 없어질 가능성이 큰 직업은 무엇일까. 현생 인류는 ‘도구를 사용하는 자’다. 도구를 사용하면서 인류는 진화를 시작했다. 이세돌 대(對) 알파고의 대결은 본질상 인간 대 기계의 대결이 아니다. 각각 다른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의 대결이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계산에 관한 한 인간의 두뇌는 컴퓨터에 비해 말할 수 없이 느리고 부정확하다. ‘바둑이라는 복잡한 계산법’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이번 대결을 통해 증명됐다. ‘바둑’이라는 분야에 새로운 도구가 출현한 것이다.
컴퓨터 편집…언론 직업이 달라져
어떤 분야에 압도적인 도구가 출현하면 그 직업은 사라진다. 전문직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신문사에 ‘문선공’이라는 전문직이 있었다. 컴퓨터로 문서를 편집할 수 없던 시대에 사람들은 신문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신문사마다 거대한 공간에 ‘제작 및 인쇄시설’을 유지했다. 크기별로 모든 글자를 새긴 각 ♣?납활자가 있었고, 그날그날 기사제목을 동판에 새기는 장치도 있었다. 문선공(文選工)은 글자 그대로 문자를 뽑아내는 사람이다.
기자들과 외부 필자의 육필원고를 보고 알맞은 크기의 활자를 찾아 판을 만드는 인력이다(외부 필자의 원고도 이메일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필자의 집에 직접 찾아가 받아 오거나 우편을 활용해야 했다) 신문 용지 크기의 판을 활자로 채우는 것이 ‘조판(組版)’이고, 이 판을 이용해 지형(紙型)을 뜨고 지형을 윤전기에 걸어 신문을 인쇄했다. 신문이 8개 면이라면 모든 면을 매일매일 이런 방식으로 제작했다. 신문 발행이 마감시간에 맞춰 촌각을 다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같기 때문에 육필원고를 읽어내고 그에 맞는 활자를 재빨리 찾아 판을 만드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문선공은 시사상식에 정통해야 했고, 몇몇 필자의 악필을 인식해야 했으며, 특정 활자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자기 몸처럼 알아야 했다. 특정인의 성명에 쓰인 특이한 글자 등 기존 보유 활자 중에 없는 한자(漢字)는 즉석에서 만들어 내는 것도 문선공의 업무였다.
언론사에 필수 인력으로 최고의 대우를 받던 문선공은 컴퓨터 편집 시대가 열리면서 한순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80년대 중반까지 신문사뿐 아니라 모든 출판사는 활판(活版)으로 책을 인쇄했다. 문선공은 신문사뿐 아니라 인쇄소와 출판사의 핵심 인력이기도 했다. 편집과 인쇄에 쓰이는 기술 및 도구 자체가 바뀌면서 이들 전문 인력이 한순간에 쓰임새를 잃은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활자를 활용해 책을 만드는 신기술이 나왔을 때도 ‘책을 베끼고 아름다운 장식체 손글자를 써서 특정 페이지를 꾸미던’ 수많 ?전문가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기술과 도구의 발달로 특정 직업이 없어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기계 효용이 인간 노동보다 높아야
미래학자들이 ‘사라질 직업’을 예측하는 기준은 ‘기계가 그 일을 대체했을 때의 효용이 인간이 그 일을 계속할 경우에 비해 얼마나 높은가’라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기준으로 ‘전투기 조종사’라는 직종을 살펴보자.
어느 사회나 비행기 조종사는 소중한 자원이다. 신체적·정신적 자질이 뛰어난 소수의 자원이 오랜 시간 동안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야 비로소 한 사람의 조종사를 만들 수 있다. 전투기 조종사는 일반 조종사보다 훨씬 더 희귀한 자원이다. 순간적으로 중력의 아홉 배를 견디고,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 상황에서도 고도의 집중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 국가관도 투철해야 한다. 그만큼 길러내기 어려운 인력이기에 모든 전투기는 설계의 상당 부분을 조종사를 보호하는 데 할애한다. 조종석을 이중 삼중으로 보호하고 유사시 탈출 장비를 장착한다. 당연히 이런 장비들은 무거울 뿐 아니라 비행기의 비행 성능에도 부담으로 작용하다. 보호 및 탈출 장비는 비행에 필수적인 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무인비행체인 드론이 발전해서 전투기 수준의 비행과 작전 수행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까. 비행체의 연료효율은 당연히 좋아질 터이다. 조종사라는 전문 인력을 사고나 전투 중에 잃을 확률도 큰 폭으로 감소한다. 세 ?각국이 무인전투기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다. 최근의 기술 발달 추세라면 여객기 조종도 조만간 무인비행이 가능한 시점이 도래할 터이다. 이착륙 및 비행에 관한 모든 통제를 지상의 컴퓨터가 제어하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만 조종사가 함께 탑승하는 편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아무래도 마음이 놓인다는 승객들의 심리가 고려 사항이다. 무인 항공기 시대의 서막은 그래서 화물기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비슷한 관점으로 컴퓨터 의사의 출현도 예측 가능하다. 진단은 컴퓨터가 하고 수술은 집도의 입회 아래 컴퓨터와 인간이 함께 수행하는 날이 곧 다가올 터이다. 아니 부분적으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비행기 조종사나 의사들의 전문성이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도구의 출현이 일처리 방식 자체를 바꾼다는 이야기다. 비행기 운항이나 치료라는 행위 자체는 여전히 인류에게 필요하지만, 그 일을 수행하는 방식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조종사는 가도 승무원은 남을듯
그렇다면 어떤 직종이 살아남을까. 조종사는 없어져도 승무원은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의사는 사라져도 간호사는 살아남으리라고 미래학자들은 예측한다. 운동선수도 살아남는다. 고도의 신체적 단련과정을 거친 사람들끼리의 경쟁에 기계가 참여하는 것은 아무래도 재미가 덜할 터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연예인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큰 직종 가운데 하나다. ‘미래시대’는 이미 우리에게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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