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미국 대선에 있고 한국 총선엔 없는 것

입력 2016-03-30 18:12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 psj@hankyung.com


[ 박수진 기자 ] 미국에는 대통령 후보가 150명 있다고 한다. 상원의원 100명, 주지사 50명은 언제라도 대통령 선거에 나갈 의지와 역량을 가진 인물이라는 얘기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NYT)에 미국 중앙은행(Fed)을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한 적이 있다. 월가를 감독해야 할 Fed가 월가에 휘둘리고 있으니 시급히 개혁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반박 글을 올린 사람이 래리 서머스다. 그는 하버드대 총장과 재무장관을 지내고 한때 Fed 의장으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경제석학이다. 웬만한 정치인의 정책에는 대꾸도 하지 않는 ‘콧대 높은’ 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샌더스 칼럼이 나온 지 1주일 뒤 NYT의 경쟁지인 워싱턴포스트(WP)에 ‘샌더스가 Fed에 관해 제기한 비판 중 맞는 부분과 틀린 부분’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정책으로 꽉찬 미 대선판

샌더스가 미국 대선판에서 ‘사회주의자’ ‘포퓰리스트’로 비판받긴 하지만 그의 논리와 내공은 서머스가 직접 나서야 할 정도로 꼼꼼하고 탄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미국 대선판에서도 후보 간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정책이다. 기본적으로 국민을 어떻게 안전하게 보호하고, 어떻게 잘살게 해주겠다는 정책 아이디어를 가지고 경쟁한다. 샌더스는 월가 개혁과 복지 확대를 비전으로, 같은 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오바마 정부 계승으로,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워싱턴 정치 개혁과 국세청(IRS) 폐지 등 강력한 정부 개편안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이들은 그런 정책 내용으로 열심히 칼럼을 쓰고, 유세와 토론을 하고, 광고를 내보낸다.

공화당 경선에서 ‘막말 제조기’ 별명을 얻은 도널드 트럼프도 예외가 아니다. 소수 인종과 이민자에 대한 자극적 비하 발언으로 지탄받고 있지만, 그런 발언의 기저엔 ‘과거처럼’ 안전하게 잘살고 싶은 백인 중산층의 말 못하는 속내를 대변한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멕시코와의 국경 장벽 강화와 시리아 이민자 입국 한시적 금지, 중국산 물품에 대한 45%의 보호무역관세 부과, 주한미군 철수 검토 같은 구호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정치인, 트럼프 욕할 수 있나

트럼프는 이런 주장들을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는 용어로 포장하고 있다. 그의 공약들이 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정책 세일즈로 승부를 걸고 있다는 점은 트럼프도 예외가 아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도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국회의원 총선거가 내달 13일로 코앞이다. 대통령을 뽑는 것과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은 다른 일이긴 하지만, 한국 총선에서 누가 어떤 정책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는 뉴스?들어본 적이 없다. 여당에서는 친박(박근혜)과 비박 간의 추악한 공천싸움 얘기만, 야당에서는 친노(노무현)와 비노 간 권력투쟁의 잡음만 들려올 뿐이다.

한국 정계에서는 트럼프를 욕하면서 미국 대선을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어쨌거나 민심을 흔드는 정책 공약으로 정치를 외면한 유권자까지 투표장으로 끌어모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정책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한국 정치인 중 누가 트럼프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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