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동떨어진 최저임금제] 성과급 임금체계 대세인데…28년 전 잣대로 "최저임금 미달" 낙인

입력 2016-04-0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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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4000만원도 '최저임금 미달'인 한국

이상한 최저임금 계산법
통상임금 범위도 넓어졌는데 여전히 매달 지급액만 인정

매년 늘어나는 기업 부담
'미달' 땐 추가 수당 줘야…일부 중소기업엔 '생존의 문제'



[ 도병욱 기자 ] 연봉 4000만원을 받는 대기업 정규직 직원들이 현행법상 최저임금도 못 받는 근로자로 분류되는 왜곡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28년 동안 변화 없이 유지된 최저임금제도 때문이다.

◆통상임금 기준은 변했는데

한국에 최저임금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86년의 일이다. 이 법은 1988년부터 시행됐다. 이후 최저임금법의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최저임금 미달 여부를 판단할 때 사용하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제도 시행 이후 일부 문구만 수정됐을 뿐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최저임금법 시행규칙에 규정돼 있다.

현행 최저임금법 시행규칙은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지급하지 않으면 최저임금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포함시키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 등에 따른 수당과 가족수당을 비롯한 기타 임금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서 제외한다고 밝히고 있다. 기본급과 매월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안전수당 등 일부 수당을 제외한 모든 임금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서 빠지는 것이다.

외국과 비교해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협소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홍보본부장은 “영국과 프랑스 등은 상여금과 숙박비를, 미국 대부분의 주와 일본은 숙식비 등을 최저임금을 산정할 때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3년 통상임금 3원칙(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제시하면서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임금의 범위가 넓어졌는데도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변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업무처리지침은 “통상임금과 최저임금은 실질적으로 범위가 비슷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임금의 범위를 판단할 때 통상임금의 개념을 참고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대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고액 연봉 직원에게도 추가수당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28년 동안 바뀌지 않은 채 최저임금은 매년 상승하면서 기업의 부담이 늘고 있다. 일부 근로자의 최저임금법상 임금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추가 수당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수당과 성과급 등을 더하면 4000만원에 달하는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데도, 최저임금제도에 걸려 추가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있다”며 “경영환경이 나빠져 노사가 임금을 동결하기로 합의했음에도 의도치 않게 임금을 인상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 수준(8.1%)으로 인상되면 일부 대기업의 직원들도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는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시에 일부 중소기업은 최저임금법상 임금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생존이 불투명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낡은 산입범위 때문에 최저임금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본급의 두 배에 달하는 상여금 및 수당을 받는 중견기업 직원과 기본급만 받는 시간제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동시에 논의하다 보니 불필요한 갈등만 증폭된다는 설명이다.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취지(근로자의 임금 최저수준 보장)와 무관하게 혜택을 보는 근로자가 발생해 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최저임금제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시간제 근로자들의 혜택은 줄어든다는 분석도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한 위원은 “최저임금을 올리면 연봉 4000만원을 받는 근로자의 임금을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경영계는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경영계와 노동계가 매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놓고 갈등을 겪는 원인 중 하나는 잘못된 최저임금 산입기준”이라고 지적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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