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활 가르는 '디지털 빅뱅'] 벤츠·테스코은행 나왔는데…한국 인터넷은행은 '33년 규제'에 발목

입력 2016-04-0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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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속도 나지 않는 핀테크 혁신

유럽·일본, 금융·IT 결합
수수료 없는 송금 등 혁신적 서비스 줄이어
카카오·KT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규제에 막혀



[ 김일규 기자 ] 영국 최대 유통기업인 테스코 매장에서는 소비자가 결제하기 위해 줄을 서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상품 바코드에 갖다 대면 개설해 놓은 ‘테스코 계좌’에서 돈이 자동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평소 자주 사는 상품 근처에 가면 공짜 쿠폰이 스마트폰 알림창에 뜬다. 테스코는 소비자 성향을 분석해 특화 대출과 펀드 상품까지 안내한다. 테스코가 설립한 인터넷전문은행인 테스코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로 핀테크(금융+기술)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선진국에선 인터넷은행 성업

테스코은행이 이같이 영업할 수 있는 것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와 경영을 제한하는 은산분리 규제가 유럽에는 없기 때문이다. 영국은 산업자본에 지분 규제를 하는 대신 10%, 20%, 30% 등 일정 지분율을 초과 보유할 때마다 건전성 차원에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만 한다. 자동차 강국 독일에서는 자동차회사들이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해 자동차금융에 특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BMW은행 메르세데스벤츠은행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도 인터넷전문은행 발전을 위해 2002년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했다.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 한도를 5%로 제한하던 것을 정부가 승인하면 20%를 초과해 보유할 수 있도록 바꿨다. 이후 유통업체와 은행이 결합한 세븐뱅크 이온뱅크 라쿠텐뱅크 등이 잇달아 설립됐다.

미국에서는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25%까지만 보유하도록 하고 있지만, 예금 대신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하면 산업자본도 은행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GM이 설립한 인터넷전문은행 알리뱅크는 오토론 등 자동차금융에 특화해 미국 29위 은행으로 성장했다.

○묵은 규제에 발목 잡힌 한국

한국에서는 2001년과 2008년 두 차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이 추진됐으나 모두 무산됐다. 은산분리 규제 때문이다. 은행법은 비(非)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 한도를 사실상 4%(의결권 기준)로 제한하고 있다. 10%까지 지분을 보유할 수 있지만, 4% 초과 지분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은산분리 규제는 은행이 기업의 사(私)금고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1983년 개정 은행법을 통해 동일인의 은행지분 보유 한도를 8%로 제한한 것에서 출발했다.

정부는 세계적인 핀테크 확산에 따라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을 제외한 산업자본에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50%까지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은행법 개정을 추진했다. 이후 카카오(카카오뱅크)와 KT(K뱅크)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뛰어들었고 지난해 11월 예비인가를 받았다. 카카오뱅크와 K뱅크는 간편 송금 및 결제, 로보어드바이저 기반의 자산관리 등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국회는 여전히 은산분리 완화를 위한 은행법 개정에 소극적이다. 설상가상으로 KT에 이어 카카오도 지난 3일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애초 정부 방침대로 은행법이 개정되더라도 카카오와 KT는 인터넷전문은행 대주주가 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33년 전 제정된 은산분리 규제로 인터넷전문은행으로 대표되는 핀테크산업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케케묵은 규제 탓에 금융업이 디지털시대의 흐름을 좇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핀테크산업의 성장을 막는 규제는 더 있다. 온라인 투자자문 규제 탓에 국내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컨설팅할 수 없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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