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읽기] 법보다 무서운 파괴자들

입력 2016-04-07 17:45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마이크로소프트(MS)의 변신이 놀랍다. MS 제국이 절대 말하지 않을 것 같던 ‘무료’ ‘개방’ 등의 용어를 거침없이 구사한다. 윈도 아닌 다른 운영체제(OS) 사용자는 물론이고 리눅스 같은 오픈소스 고객들에게도 미소를 지으며 다가선다. 그냥 그대로 개방된 MS를 체험해 보라고. 오픈소스 진영을 암적 존재로 여기던 MS가 이젠 대놓고 그들을 유혹한다.

MS는 ‘모바일’ ‘클라우드’를 외치며 전통적 비즈니스 모델을 깨는 중이다. 소프트웨어 제품 라이선스 모델을 벗어나 사용한 만큼 지불하는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로 가고 있다. 소프트웨어산업의 또 다른 지각변동이다. 기업 관료주의의 전형 같던 독점기업 MS의 반전이다.

누가, 무엇이 MS를 바꿨나

혹자는 스티브 발머와는 너무 다른 사티아 나델라에 주목한다. 하지만 제국이 무너질 판에 누가 MS 최고경영자(CEO)로 오든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또 다른 이는 미국 규제당국으로 눈을 돌린다. 이게 미국이 자랑하는 ‘반(反)독점법의 위력’이라고. 그러나 미 정부가 MS에 반독」?소송을 제기한 적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MS를 더 은밀한 ‘혁신의 억압자’로 만들었을 뿐이란 분석도 있다. 법이 무섭다고 해도 기업 스스로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하도록 만들진 못한다.

그렇다면 누가 제국을 변하게 했나. 창업자 빌 게이츠가 단서를 제공한다. 게이츠는 반독점법보다 훨씬 무서운 건 밤새 누군가의 혁신이 어느 날 아침 윈도 제국을 파괴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바로 그거다. MS를 변하지 않곤 못 배기게 만든 건 크롬을 앞세운 구글, 끈질긴 오픈소스 같은 파괴자들이다. ‘혁신의 경주’야말로 진보의 힘이라는 게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어떤 독점도 혁신하지 않으면 붕괴는 필연적이다.

카카오, 셀트리온이 자산 규모 5조원대로 올라서면서 공정거래법상 규제받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벤처로 출발한 이들로선 자산을 잣대로 한 사전적 규제가 황당하게 느껴질 것이다. 차라리 혁신을 막는 관행을 규제할 것이지 이게 뭐냐는 불만도 들린다. 정부는 여전히 경제력 집중 운운하지만 지금은 언제, 누구에 의해 파괴당할지 모르는 시대다.

신산업은 ‘파괴자들의 축제’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는 카우프만재단 근무 당시 로버트 리탄이 말했던 ‘플랫폼 혁신론’에 주목하는 게 좋겠다. 새로운 플랫폼이 기존 플랫폼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또 다른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할 동력이 사그라들지 않게 해야 한다는 논지다. 정부가 할 일을 알려주지 않는가.

구조조정 문제도 파괴자 관점에 서면 진단도 처방도 자명해진다. 기존 시장에 안주하다 자신들을 통째로 몰아낼 파괴자?나타나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업보다. 그런 상황에서 인수합병 등을 놓고 독과점이 어떠니, 사업자 수는 몇 개여야 하느니 등의 논란이 무슨 소용이겠나. 새로운 혁신으로 맞대응할 수 없으면 공멸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새롭게 생각하는 것보다 옛 생각에서 벗어나는 게 진짜 난제”라고. 정작 케인스는 죽은 지 한참 지났다. 하지만 혁신 장려보다 아직도 ‘돈 풀기’ 케인스 처방에 매달리는 이들이 넘쳐난다. 4차 산업혁명이니, 디지털혁명이니 백날 떠들어도 안 되는 이유일지 모른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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