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의 데스크 시각] '유통전쟁' 아닌 '유통혁명'을

입력 2016-04-10 18:05  

박성완 생활경제부장 psw@hankyung.com


요즘 아파트 분리수거장엔 명절 때가 아니어도 박스가 많이 쌓인다. ‘로켓배송’ 박스, 이마트 박스, 우체국택배 박스 등. 휴대폰 화면을 몇 번 톡톡 치면 필요한 물품을 집에서 받을 수 있게 되면서 나타난 변화의 단면이다.

아직은 아날로그가 더 친숙한 기자도 예전엔 제품의 질을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는 책 정도를 온라인으로 주문했지만 이젠 딸아이 옷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다. 급한 책이 있는데 구하기 어려우면 인터넷 서점에서 e북을 구매한다. 과일 야채 같은 신선식품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유통'이 신기술 도입 최전선

유통환경 변화는 각국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가장 선도적인 기업이 미국의 아마존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출발한 아마존은 3억7000만여개 제품을 전 세계 소비자에게 판매해 ‘모든 것을 파는 상점(the everything store)’으로 불린다. 아마존은 드론(무인항공기) 배송에도 가장 적극적이다. 2.3㎏ 이하 물품이면 16㎞ 범위 내에서 30분 안에 배송하는 것을 목표로 ‘프라임 에어’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버튼만 누르면 휴지나 세제가 바로 주문되는 아마존 ‘대시(Dash)’는 센서를 활용한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적용된 사례다. 버튼도 필요 없이 프린터에서 토너가, 애완동물 급식기에서 사료가 떨어질 때쯤 알아서 자동으로 아마존에 주문되는 서비스도 시행 중이다.

세계 최대 인터넷기업 구글 역시 ‘프로젝트 윙’이란 이름으로 드론 배송을 연구 중이다. 자율주행 트럭을 이용한 물품 배송 기술특허도 받았다. 무인 배송 트럭이 집 앞에 도착하면 온라인 주문 때 정한 비밀번호 등을 활용해 트럭 소포함에서 구매 물품을 꺼내는 방식이다. 일본에선 동네 근처 작은 창고 같은 점포에서 인터넷 주문만 받아 신선식품을 배송해주는 업태가 등장했다고 한다.

최저가 승부만으론 한계

한국 유통업체들도 ‘스마트’해지고 있다. 오픈마켓, 소셜커머스 등 각종 형태의 업체들이 경쟁하고 있다. 기존 백화점과 마트도 온라인몰을 강화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SK텔레콤과 손잡고 바코드 스캐너로 쇼핑 중 원하는 품목을 스캔하면 정해진 날짜와 장소에 배송해주는 ‘카트가 필요 없는 쇼핑’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자체 배송 직원 쿠팡맨과 빠른 ‘로켓배송’을 도입한 쿠팡은 공동구매 형식의 소셜커머스에서 벗어나 ‘한국의 아마존’을 지향하고 있다.

요즘 이마트와 쿠팡이 최저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양쪽 모두 관련 품목 매출이 늘었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당장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으니 반가울 따름이다. 하지만 단기 마케팅이면 모를까, ‘가격 전쟁’이 계속되는 게 꼭 좋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진짜 역(逆)마진이라면 더?그렇다. 월마트의 ‘매일 최저가(everyday low price)’ 전략은 물류를 혁신한 아마존의 ‘공습’에 밀렸다.

몇 년 뒤엔 자동 번역기가 일반화돼 국내 유통기업들의 보호막이던 ‘언어 장벽’이 사라질 수 있다. 국내 기업들에는 해외 진출의 기회이기도 하다.

상상이 기술로 뒷받침되는 시대다.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이 강하다. ‘10원 전쟁’보다는 제조와 유통 생태계를 단단히 하고, 새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유통혁명이 더 절실한 때다.

박성완 생활경제부장 ps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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