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공천 과정에서 그들만의 ‘밥그릇 싸움’을 벌인 결과라는 해석과 함께 양당 구도에 대한 심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당에 대한 중산층의 실망감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여권의 국정 운영에 험로가 예상된다.
1 ‘리더십 오만’에 분노
무엇보다 새누리당의 오만이 패배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선거 막판까지 공천을 두고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으로 나뉘어 싸움박질을 거듭한 것이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31일 직전까지 공천을 두고 ‘막장 드라마’를 연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친박계와 비박계는 공천 룰을 두고 지난해 8월부터 다투기 시작했다. 비판 여론이 들끓었음에도 공천 마감이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양측은 타협을 보지 못하고 ‘극한의 대결’을 펼쳤다.
상향식 공천을 주장한 김무성 대표와 일부 지역 전략 공천을 내세운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공천 심사 기간 내내 정면으로 충돌했다. ‘비박 쳐내기’를 두고 당 지도부가 끝없이 싸운 끝에 김 대표가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가면서 이른바 ‘옥새 나르샤’ 파동을 겪기도 했다. ‘진박(진짜 친박) 후보론’도 역풍을 맞았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영남을 기반으로 한 지역 패권에 기댄 오만함에 대한 심판을 받았다”며 “민심을 모르고 우리만의 ‘싸움 잔치’를 벌였다”고 뒤늦게 탄식했다.
2 野 지지자 ‘교차투표’
야당 표는 지역별로 확연하게 갈렸다. 지역구 선거에서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대승을 거뒀고, 수도권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다. 야당 성향의 표가 지역구는 더민주, 비례대표 정당 투표는 국민의당을 선택하는 ‘교차투표-전략투표’의 성격이 강했다.
될 후보와 정당에 전략적인 선택을 하면서 야권은 당선 효과를 극대화했다. 반면 새누리당엔 타격을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3 신뢰 잃은 양당 대결
이번 총선 결과는 양당 구도에 대한 심판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시급한 경제 법안 하나 제때 처리하지 못하는 등 ‘최악의 국회’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얻은 19대 국회의 거대 양당 체제를 바꿔보자는 민의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더민주는 19대 국회 내내 쟁점 법안을 두고 갈등을 벌였다. 5분의 3 찬성이 필요한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입법을 마비시키는 주범이었다. 야당은 이를 지렛대 삼아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국회 일정을 보이콧했다. 새누리당은 쟁점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외치면서도 야당과 제대로 된 타협을 보여주지 못했다. 국민의당은 이 틈을 타고 ‘양당 심판론’을 제기해 효과를 거뒀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하고 국민의당이 30석 이상을 확보함에 따라 정치판은 이전과 다른 지형이 이뤄졌다. 새누리당과 더민주 양당 체제에서 국민의당이 더해진 확고한 3당 구도가 된 것이다. 지난 2월 창당한 국민의당은 3월16일에야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바람에 제대로 활약할 기회를 얻지 못해 3당 체제가 정립됐다고 보기엔 한계가 있었다. 3당 체제는 자유민주연합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한 1996년 15대 총선 이후 20년 만이다. 새누리당과 더민주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국회를 운영할 수밖에 없게 됐다.
4 ‘앵그리 보터’의 반란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완패했다. 젊은 층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등을 돌린 결과라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새누리당이 공천 갈등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젊은 층과 중산층을 효과적으로 유인할 수 있는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전통 텃밭이던 서울 강남을에서 전현희 더민주 후보가 승리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총선 전 이곳의 여론조사 결과는 김종훈 새누리당 후보가 전 후보를 월등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야권이 분열하면서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에 유리한 선거 구도가 형성됐지만 효과적인 전략과 전술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새누리당에 실망한 표가 국민의당으로 상당수 넘어갔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5 ‘경제심판론’ 먹혔나
야당의 경제심판론 제기에 대해서도 새누리당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당내에서 나온다. 더민주는 선거 기간 내내 역대 최악의 실업률 등을 내세우며 ‘정권 심판론’을 줄기차게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국정 발목을 잡는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야당 심판론’을 외쳤을 뿐 야당의 이런 주장에 대해 제대로 된 반박 논리를 제시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뒤늦게 반성의 메시지를 내놨다. 안형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이번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2016년 4월13일은 국민의 뜻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뼛속 깊이 새기게 한 날”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새누리당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날”이라며 “그동안 보수는 따뜻해야 한다면서도 국민을 따뜻하게 껴안지 못했고, 앞장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면서도 제대로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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