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성태 기자 ] “한 매체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후보가 45.8%, 제가 28.5%였습니다. 17.3%포인트 격차입니다. 이 숫자를 꼭 기억해주십시오. 이것이 왜곡인지 아닌지 제가 증명해보이겠습니다.”
4·13 총선의 선거전이 후끈 달아오른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에 출마한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정 당선자는 선거 운동기간 내내 새누리당 오세훈 후보에게 많게는 20%포인트 이상 밀리는 것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정 당선자는 52.6% 득표율로 오 후보(39.7%)에게 12.9%포인트 차이로 압승했다.
정 당선자 지적대로 이 정도면 ‘반전이 아니라 왜곡’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총선 개표 결과 경합지가 아니라 오차범위를 벗어난 우세지역의 예측이 번번이 빗나가 여론조사의 폐해와 무용론이 또다시 불거졌다.
백분율 ‘숫자’가 주는 영향력을 빗대 여론조사는 입법 사법 행정 언론에 이어 ‘제5부권력’으로 불린다. 누구를 찍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부동층에 여론의 향배와 추이는 참고할 만한 데이터다. 하지만 조사기법의 결함이나 불순한 의도로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여론을 호도하는 ‘흉기’로 변한다. 잘잘못의 책임소재를 가릴 수 없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란 점에서 더 큰 문제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여론조사 부작용이 제기되는 것은 표본 추출의 한계로 인한 기법상 오류 못지않게 여론을 고의적으로 왜곡시켰다는 혐의가 짙어서다. 현재 유선전화 보급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ARS(자동응답시스템) 조사방식으로는 세대별 여론을 제대로 취합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부동산 ‘떴다방’처럼 생겨났다 없어지는 영세업체들이 특정후보와 결탁해 ‘입맛에 맞는’ 결과를 뽑아낸다는 소문도 근거가 없지만은 않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온갖 처방을 내놓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난립하는 여론조사에 부화뇌동하지 않는 ‘스마트보터(smart voter)’가 늘어나야 하는 이유다.
손성태 정치부 기자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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