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혁 기자 ] 대만의 거장 허우샤오셴 감독의 영화 ‘자객섭은낭’은 지난 2월 초 개봉해 관객 1만5000여명을 모았다. 흥행 참패였다. 3년 전만 해도 이 정도 관객이면 이익을 냈다. 할리우드 대작 외에 소규모로 개봉하는 다양성 외국 영화의 수입 가격이 1만~5만달러였기 때문. 그러나 이 영화는 수입사의 경쟁 과열로 수입 가격이 13만달러(약 1억5000만원)로 솟구쳐 손익분기점이 15만명가량에 달했다.
영화 수입사들이 날로 치솟는 외국 영화 수입 가격에 위기를 느껴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는 “영화 수입사 관계자들이 지난 8일 한자리에 모여 오는 10월께 가칭 ‘영화 수입사 네트워크’를 결성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14일 말했다. 이날 모임에는 엣나인필름 외에 그린나래미디어, 씨네룩스, 판씨네마, 퍼스트런 등 10여개사가 참여했다. 이들은 매달 정기모임을 열고 참여업체 수를 늘려갈 예정이다.
이 네트워크는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구분이 없이 중소업체뿐 아니라 대기업에도 문호를 개방할 방침이다. 네트워크는 외국 영화 판매사의 유통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영화를 수입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등록된 영화 수입사는 800여개에 달하지만 실제 활동하는 업체는 100여개로 알려졌다.
수입 가격 폭등세는 2010년 이후 외화 수입이 급증하면서 나타난 과열 경쟁 때문이다. 영진위에 따르면 2000년 200여편 정도였던 수입 외화는 2012년 466편, 2014년 878편, 2015년 946편으로 폭증했다. 같은 기간 국내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는 152편에서 257편으로 늘어났다.
외화 수입이 급증한 것은 IPTV와 케이블TV, 모바일 등의 주문형비디오(VOD) 시장이 커지면서 콘텐츠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극소수 영화들은 극장가에서 ‘대박’을 거둬 수입 가격 폭등에 불을 댕겼다. 2011년 ‘인사이드 르윈’(6만7000명), 2012년 ‘아티스트’(17만5000명), 2013년 ‘블루 재스민’(14만명) 등에 이어 2014년 ‘비긴 어게인’이 정점을 찍었다. 손익분기점이 30만명이었지만 343만명을 동원한 것. 지난해 ‘위플래쉬’도 손익분기점의 열 배 이상인 158만명을 모았다.
수입 경쟁이 과열되면서 3년 전만 해도 1만~5만달러에 들여왔던 외화가 올 들어 최소 10만달러 이상으로 솟구쳤다. 지난 2월 개봉한 ‘캐롤’의 수입 가격은 30만달러였다. 다른 해외 바이어도 한국의 수입 가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가격을 턱없이 높게 부르고 있다.
정 대표는 “예전에는 해외 판매사가 요구하는 금액의 5분의 1, 10분의 1 수준에서 계약이 체결됐지만 한국 수입사가 몰린 최근에는 판매사가 처음 요구한 금액에만 사도 좋은 계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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