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가슴 사무치게 푸른길, 해파랑

입력 2016-04-17 15:56   수정 2016-04-17 16:01


해(太陽)와 파란 바다(海), 그리고 파도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 해파랑길(Haeparanggil.org)을 들어보셨나요? 해파랑길은 부산의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걷기 시작해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10개 구간 50코스 770㎞에 달하는 국내 최장 걷기 길입니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가장 좋아했다는 해파랑길을 완주하면 부산, 울산, 경주, 포항, 영덕, 울진, 삼척, 동해, 강릉, 양양, 속초, 고성 등 12개 시·군을 지나게 됩니다. 해파랑길에서 만나는 해운대, 장사, 칠포, 대진 고래불, 용화, 망상, 경포대, 화진포, 원산의 명사십리 등 동해안의 바닷가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5월 여행주간, 바닷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사무치게 아름다운 우리 국토의 매력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침 여행주간에 해파랑 걷기 축제도 열리니 일거양득(一擧兩得) 아닐까요?

환상의 바닷길 영덕 블루로드

해파랑길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진 길이 영덕 블루로드다. 강구, 창포, 노물, 석리, 오매, 차유, 사진, 고래불…. 이름도 예쁜 동해의 어촌을 이어주는 푸른 길이다. 울창한 솔숲과 쪽빛 바다가 눈부시게 펼쳐진 길에?마을마다 살가운 풍경이 기다린다. 영덕 블루로드는 A~D코스로 나뉘며 총길이 64.6㎞로 21시간이 넘는 대장정이지만, 체력과 시간을 고려해 알맞은 코스를 걸으면 된다.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B코스(푸른 대게의 길)다. 해맞이공원에서 축산항 영양남씨 발상지까지 ‘환상의 바닷길’로 불리는 구간이다. 15㎞ 내내 옥빛 바다를 곁에 두고 걸으니 블루로드의 백미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영덕 블루로드 B코스의 출발점은 해맞이공원이다. 시작부터 눈이 시릴 만큼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대게의 집게발이 태양을 문 형상이 독특한 창포말등대가 망망한 바다에 섰다.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는 정자까지 이어진 나무 계단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 위를 걷는 착각에 빠진다. 수선화, 패랭이꽃, 해당화, 갯메꽃 등이 계절마다 반겨주는 야생화 탐방로이기도 하다.

해맞이공원은 1997년에 대형 산불이 난 자리다. 화마로 황폐해진 곳을 자연공원으로 조성해 2003년 해맞이공원이 태어났다. 언덕 위를 올려다보면 커다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이국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A코스에 속하는 영덕풍력발전단지다. 사계절 바람이 많은 이곳에는 풍력발전기 24개가 세워졌다. 높이 80m, 길이 41m에 달하는 날개를 쉴 새 없이 돌리는 동해의 푸른 바람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자연의 비경을 고스란히 담은 해변 길

해맞이공원을 지나 주차장에서 바다로 내려서는 길에 접어들면 오롯이 바다와 함께 걷는다. 대탄, 오보, 노물 등 이름도 정겨운 어촌이 반긴다. 해안 절벽을 아슬아슬 지나기도 하고, 아무도 모르는 장소처럼 숨은 해변을 만나기도 하고, 바다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노물마을을 지나면 솔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해안선이 파도처럼 다이내믹하게 연결된다. 석리마을 입구까지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만나는 것도 잠깐이다. 산 언덕에 층층이 자리 잡은 집이 갈매기가 모여 사는 듯한 석리마을을 지나면 때 묻지 않은 풍경이 기다린다. 가다 보면 종종 해안을 향해 선 초소를 만난다. 해안 보초를 서던 군인들이 다니던 길에 철조망이 걷히고 일반인의 출입이 가능해지면서 블루로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자연의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매마을(경정3리)에는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풍경이 있다. 500년 된 향나무가 마을 앞에 언덕 하나를 감싼다. 향나무가 휘감은 언덕 아래를 자세히 보면 다양한 지질층이 눈에 띈다. 수억년 세월을 한꺼번에 만나는 순간이다. 마을 앞바다에는 금강산 1만2000봉을 옮겨놓은 듯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파도 속에 신비롭게 보인다.

해송과 함께 풍력발전기 이채로운 모습

긴 모래부리라는 뜻이 있는 뱃불마을(경정1리)의 고운 모래 해변을 지나면 차유마을(경정2리)이다. 차유마을은 대게 원조마을로 유명하다. 대게가 서식하기 가장 좋은 장소로, 대게의 맛과 질이 단연 우수한 곳이다. 대게 원조마을 기념비와 마을을 지나 축산항으로 가는 길은 아름드리 해송이 쭉쭉 뻗어 있다. 해송 숲길 옆으로 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바다를 보느라 걸음이 자꾸 느려진다.

해송 숲길 끝에 어느새 B코스 종착지인 죽도산이 보인다. 활처럼 휜 해변을 지나 블루로드다리를 건너고, 나무 계단을 따라 죽도산전망대에 오르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아득하다.

바람에 실려 온 듯 꿈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앨범처럼 한 장씩 새겨지기도 한다.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성냥개비만하게 멀어졌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영덕 블루로드 코스

A코스(빛과 바람의 길) 강구터미널에서 풍력발전단지를 지나 해맞이공원까지 이어지는 17.5㎞ 구간(6시간).
B코스(푸른 대게의 길) 해맞이공원에서 오매마을, 뱃불마을을 거쳐 죽도산까지 이어지는
15㎞ 구간(5시간).
C코스(목은 사색의 길) 영양남씨 발상지에서 목은기념관과 괴시마을, 고래불해수욕장까지 17.5㎞ 구간(6시간).
D코스(쪽빛 파도의 길) 대게누리공원부터 장사해수욕장, 삼사해상공원, 강구터미널까지 14.1km 구간(4시간30분)

꼭 가볼 만한 해파랑길 명소 3선

◆해안침식이 빼어난 1코스

해파랑길의 시작점은 오륙도가 마주보이는 오륙도해맞이공원이다. 시작점에 있는 해파랑길 종합안내소에서 이어지는 ‘이기대길’은 파도가 깎아낸 풍경들이 빼어나다.

이기대길은 기존 해안순찰로를 정비하고 위험한 곳은 나무데크와 울타리로 안전하게 바꾸어 걷기 좋게 만들었다. 광안대교의 웅장한 위용과 고운 백사장이 깔린 광안리 해변을 지나면 해운대에 이른다.

대문장가인 최치원이 속세를 버리고 가야산으로 들어가던 길에 빼어난 경치에 반해 자신의 자(字)인 해운(海雲)을 바위에 새겨 넣은 후 해운대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동백섬 바위에 최치원이 새겼다는 해운대 글씨가 또렷하다.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14코스

대게와 과메기의 본고장인 구룡포항에서 시작하는 코스다.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에는 아직 옛 풍경이 그대로 남아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시종일관 수려한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가 연간 100만명이 찾는 일출 명소 호미곶에 이른다. 14㎞로 총 3시간 걸린다.

◆산과 호수 바다를 모두 보는 49코스

산과 호수, 바다를 모두 걷기 때문에 고성 지역의 지리적·역사적 특성을 두루 느낄 수 있는 코스다. 고성에서 가장 큰 항구인 거진항에서 여행은 시작된다. 몇 걸음만 움직이면 거진등대 해맞이공원을 만나는데 거진항과 가까워 주민들이 새해맞이 장소로 많이 찾는 곳이다. 최근에는 관광객이 점점 늘어나면서 고성을 대표하는 해맞이 명소로 변모하고 있다. 고성 화진포의 빼어난 절경 아래에 권력자들은 별장을 지었다.

대표적인 곳이 지금은 ‘화진포의 성’이라 불리는 김일성 별장과 이승만 별장인데 고성의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화진포에선 작은 항구와 마을을 만나면서 소박함을 엿볼 수 있다.

여행 메모

마을마다 횟집과 펜션, 민박집이 있어 먹고 잘 곳은 걱정이 없다. 출발하기 전에 마실 물이나 간식을 넉넉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모자와 가벼운 등산화는 필수. 포항까지 연결된 KTX 덕분에 영덕이 한층 가까워졌다. 포항역에 내리면 영덕까지 하루 네 차례 왕복 버스가 다니므로 블루로드를 찾는 길이 더 편해졌다.

시원한 물회는 영덕대게로에 있는 경정횟집(054-734-1768)이 잘한다. 재첩국은 송천강재첩국집(054-733-0094)을 추천한다. 동해해상관광호텔(054-733-4466)은 깔끔하고 시설이 좋다.

블루로드에는 스탬프를 찍는 장소가 여섯 곳 있다. 여섯 개 스탬프를 찍어 완주 메달을 받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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