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기댄 파생상품 규제는 문제
[ 윤정현 기자 ] “구조조정으로 기업을 정리하면 경제성장률이 떨어집니다. 어떤 정권이 그런 결과를 원할까요. 망설이면서 폭탄을 돌릴 수밖에 없죠. 이런 측면에서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목표로 하는 ‘한국판 양적 완화’는 분명히 의미가 있습니다.”
안동현 신임 자본시장연구원장(52·사진)은 21일 취임을 앞두고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계기업 구조조정은 가계부채 문제와 함께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점에서 한국판 양적 완화도 정책 결정의 선택지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의 경제 공약인 한국판 양적 완화는 한국은행이 산업은행 채권을 인수해 기업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고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증권도 가져와 주택담보대출 상환기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가계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국공채가 아니라 부실채권을 사들이고 경기부양이 아니라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춘 만큼 이를 ‘질적 완화’로 명명할 수 있다”며 “질적 완화와 함께 금리 인하, 공적자금 투입 등의 방법을 놓고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한다는 의미의 ‘양적 완화’와는 구분해야 하는 만큼 논의를 해보지도 않고 선택지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안 원장은 “구조조정은 해야 한다면서 그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며 “그런 점에서 ‘질적 완화’는 깊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자본시장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는 지나친 쏠림 현상을 꼽았다. 안 원장은 “자산운용사들도 액티브 아니면 패시브, 주식 아니면 채권”이라며 “회사별로 동조화 현상이 강해서 차별화가 안 된다”고 말했다. 펀드에서 주가연계증권(ELS)과 파생결합증권(DLS), 그리고 최근엔 상장지수펀드(ETF)가 인기를 끌 듯 하나의 테마로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수익률이 안 나오면 완전히 소외돼 버린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의 두 축인 사는 쪽과 파는 쪽의 불균형도 한계로 꼽았다. 미래에셋대우처럼 자기자본을 늘려 증권사들이 대형화하고 있지만 사줄 수 있는 주체가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사들이 해외로 영업망을 넓혀야 하는 이유다. 파생상품 시장의 규제에 대해서는 “담장을 높이면 될 것을 그 위에 철조망을 쳐버리니 시장이 시들 수밖에 없다”며 “당국이 단기 여론에 너무 민감한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 19일 총회에서 안 원장을 선임했다. 임기는 3년이다. 안 원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재무경제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스캐롤라이나대 경영대학 부교수를 거쳐 2003년 이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민경제자문위원회와 금융발전심의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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