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여풍 130년

입력 2016-04-24 18:06   수정 2016-04-25 05:14

최경희 < 이화여대 총장 president@ewha.ac.kr >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51명의 여성 의원이 탄생했다. 전체 의석 중 17%가 여성으로, 역대 최고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고 여성 고위직 공무원, 여성 최고경영자(CEO) 등 사회 주요 분야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남성을 앞질렀고 공무원기업 입사 시험에서도 여성들이 상위권을 휩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여풍’이라고 말한다. 여성 교육은 꿈도 꾸지 못하던 불과 한 세기 전의 한국을 생각하면 눈부신 변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완전한 양성평등이 실현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직도 공·사적 영역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 비율이 절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들이 남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이화여대 제4대 총장인 룰루 프라이 선생의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 이화여대는 남성과 여성이 똑같은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하는 세상을 꿈꿨다. 남성과 여성이 광활한 세계를 함께 다니며 사나운 바람과 뜨거운 태양, 도시의 매혹을 함께 경험하는 세상.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다시 밝아오는 아침의 신선한 풍경에 매혹을 느끼고 세상은 참 살 만하다고 느끼는 세상을 꿈꿨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안개처럼 쉽게 사라져버리는 이상 때문에 우리는 몹시 지치고 힘들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이화는 그 이상을 위해 분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성에게조차 고등교육의 기회가 드물던 1910년 이화는 대학과를 설립했고, 1946년 국내 최초로 종합대 설립인가를 받았다. 세계 여성의 인권 향상을 위해 땀 흘렸고 여성이 최초로 진출하는 분야를 하나씩 더해갔다. 최근에는 ROTC를 유치해 우수한 여성 장교를 교육할 수 있는 길도 마련했다. 이화의 130년 역사는 여풍 130년을 만들어간,양성평등을 향한 역사였다.

과거 여자대학의 목표가 사회적 약자로 여겨지던 여성의 인간화였다면, ‘우머노믹스’ 시대가 기대되는 오늘날의 여자대학은 여성에게 최적화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해야 하는 새로운 책임을 안고 있다. 이화여대가 이공계 강화를 향해 노력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우수한 여성공학인재, 그리고 융복합형 인재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 학생들의 자기 발전을 인도해주지 못하면 여풍은 사라지고 변화의 바람은 멈추게 된다.

진정한 양성평등이라는 우리의 목표는 너무 멀어서 앞으로도 남아 있는 모든 힘까지 모두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여풍에 담긴 우리 희망은 너무 강렬해서 시대의 난제들이 그 눈부신 빛에 저절로 바래버리고 말 것이다.

최경희 < 이화여대 총장 president@ewh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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