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첫째도 이리 힘든데 둘째가 웬 말?

입력 2016-04-25 19:01   수정 2016-10-03 11:06

3일 연속 반차 내며 구한 베이비시터
3주 만에 돈 더주는 집에서 '스카우트'

직장인들 고군분투 육아일기

부모 노릇은 해야겠고…
'놔두면 알아서 큰다' 상사 충고에도 아이 걱정에 격일 반차 '무리수'

직장서 퇴근, 집으로 출근
야간 불침번보다 고된 '야간 수유'…뜬 눈으로 밤 새 회사선 꾸벅꾸벅

속출하는 '둘째 포기' 선언
첫째 봐주는 부모님 "둘째는 못봐"…또 낳고 싶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 이현동 기자 ]
아내와 맞벌이하는 한 과장(38)은 연초 있었던 사내 어린이집 추첨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가 다니는 회사의 어린이집은 좋은 교사진과 시설을 갖추고 있다. 밤늦게까지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다. 보육비도 저렴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년 초만 되면 등록 희망자가 줄을 선다.

한 과장은 첫째 딸에 이어 둘째 딸까지 이곳 입학을 노렸지만 추첨에서 떨어졌다. 그는 “부모님이 지방에 계시고, 보모를 쓸 경제적 여건도 안 돼 앞이 캄캄하다”며 “며칠 전에는 ‘둘째를 괜히 낳았나’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육아문제는 젊은 대리, 과장급 殆坪?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숙제다. 정부가 연이어 육아 관련 정책을 내놓고, 각 회사도 육아 인프라 확충에 적극 투자하고 있지만 한 과장과 같이 ‘현장’에 있는 직장인의 고민은 커져만 가고 있다.

육아를 이유로 회사 생활에 빈틈을 보이면 상사와 동료의 따가운 시선이 뒤따른다. 육아에 대한 책임에서 한발짝 비켜나 있는 남자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여자들은 육아 문제 때문에 부서 회식에서 빠지려고 하면 “아이들은 낳아놓으면 알아서 큰다” “너만 아이 키우느냐” 하는 수군거림을 대놓고 들을 때도 많다.

통계청의 ‘2015년 출생·사망 통계’에 따르면 국내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작년에 1.24명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다. OECD는 합계출산율이 1.3명 이하인 곳은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한다. 한국은 2001년 이후 초저출산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눈치는 보이지만…

서울 여의도에 있는 금융회사에 다니는 박 과장(33)은 얼마 전 3일 연속 반차를 냈다. 두 살배기 딸을 돌봐줄 보모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3일 동안 지원자 7명을 직접 인터뷰했다. 그는 “아이와 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만큼 직접 면접을 봐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박 과장이 보모 인터뷰에 나선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달에도 며칠간의 면접을 통해 10년차 베테랑 보모를 뽑았다. 기쁨도 잠시였다. 이 보모는 일한 지 3주 만에 “더 많은 급여를 주겠다”는 집으로 옮겨버렸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엄마들 사이에서는 명절 때 시댁 식구보다 보모 선물을 챙기는 게 더 중요해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입경쟁’이 치열하다”며 “빈번한 반차로 회사 눈치는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 한 대기업에 다니는 김 대리(32)도 요즘 이틀에 한 번꼴로 오후에 반차를 쓰고 있다. 세 살짜리 딸이 어린이집을 옮겨 적응할 동안 맞벌이하는 아내와 하루씩 번갈아가며 지켜보기로 해서다.

회사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은 감수하기로 했다. 그는 염치없지만 한 주만 더 ‘격일 반차’를 쓸 계획이다.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잘 못 어울리는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팀장님은 아이들은 놔두면 다 잘 큰다고 일에나 신경 쓰라고 하지만, 혼자 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

육아는 또 다른 직장생활

대기업에 다니는 안 대리(33)는 최근 ‘꾸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업무 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일이 많아서다. 상무가 주재한 회의 시간에 졸다가 단단히 잔소리를 들었다.

그가 꾸벅이가 된 건 두 달 전 태어난 첫째 아이의 ‘야간 수유’ 당번이 됐기 때문이다. 전업주부인 아내는 “온종일 내가 아이를 봤으니 밤 수유는 당신이 맡아달라”고 말했다.

난산을 겪어 몸이 좋지 않은 아내의 부탁을 그는 외면할 수 없었다. 한창 깊은 잠을 자야 할 시간에 매일 서너 번을 깨니 군 시절 ‘야간 불침번’을 서는 것보다 더한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

한 원자재 회사에 근무하는 최 대리(31)는 결혼 6개월차 새 신岵甄?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지만, 벌써 아내와 시작하지도 않은 육아 문제로 종종 말다툼을 하고 있다.

최 대리는 올해 초 국내 물류팀에서 해외 시장조사를 담당하는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에 따라 한 달에 2~3번씩 해외 출장을 다니고 있다. 남미, 유럽 등으로 장거리 출장이 많아 체력 부담이 크다. 최 대리는 아이를 빨리 갖고 싶다. 하지만 그의 부인은 “당신이 이렇게 바쁘다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아이를 적어도 세 명은 낳고 싶은데, 아내 말에도 일리가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다시 국내팀으로 발령받기 위해 로비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둘째는 꿈도 못 꿔

서울 여의도 한 증권사의 채권 트레이더인 김모씨(32)는 아내와 상의 끝에 둘째를 낳지 않기로 했다.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은행에 다니는 그의 아내와 월급을 합치면, 아이 둘 키우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는 둘째를 낳지 않기로 한 이유에 대해 “자식들에게 부끄러움 없는 부모가 될 자신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그는 5년째 경기 안양에서 회사로 오전 7시까지 출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야근도 빈번하다. 주중에는 회사 생활로, 주말에는 밀린 잠을 자느라 올해 네 살인 첫째 아이는 경기 분당에 있는 처가에 맡겨놓고 있다. 주말에 잠깐 들러 얼굴을 보고 오는 게 전부다.

“구조조정 등으로 일찍 회사를 관두는 일이 많은 증권업 특성상 젊었을 때 바짝 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장인, 장모가 며칠 전 둘째는 절대 봐줄 수 없다며 엄포를 놓으시더라고요. 더 이상 폐를 끼치지 말자는 생각에 둘째는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지방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채 과장(38)은 8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초보 아빠다. 하지만 벌써 둘째 고민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중앙부처 사무관인 아내는 휴직 중이다. 아내는 며칠 전 둘째를 가질 거면 연년생으로 낳겠다고 선언했다.

아내는 결혼 전 청와대 파견 근무를 다녀왔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비교적 육아휴직이 자유로운 공무원이지만,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둘째를 낳는다며 또 휴직하면 경력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아내의 생각이다.

아내는 “아예 둘째까지 낳고 2년을 쉰 뒤 복직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채 과장은 “둘째 생각이 없지 않지만 내년부터 이 고생을 또 하려니 엄두가 안 나고, 아내 휴직기간에 줄어드는 수입도 신경 쓰인다”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속상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현동 기자 gr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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