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예언자 아니라 역사학자…미래는 알 수 없어
역사 교육은 변화 대처하는 역동성 키워줘야
100년 후 경제력이 몸·두뇌·DNA까지 바꿀 것
매일 2~3시간 명상…내가 누군지 찾으려 노력
[ 이미아 기자 ]
“저는 예언자가 아니라 역사학자입니다. 예언자는 수많은 가능성 중 단 하나만을 집어내 오직 그것만이 이뤄질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역사학자는 그 반대로 하죠. 그런데 사람들은 제게 역사가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만 묻습니다. 제 답은 하나뿐입니다. 미래에 대해 알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40)는 2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단독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알고자 함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든 대처할 수 있는 역동성과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피엔스》의 95%가 과거 역사에 대한 내용이고 미래에 대한 건 5%에 불과한데, 대다수 독자는 역사는 묻지 않고 단지 그 5%의 미래에 대해서만 묻는다”고 지적했다. 세간에서 자신을 인간과 인공지능(AI)의 관계를 논하는 미래학자처럼 여기는 것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세 전쟁사를 전공한 하라리 교수는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인류 역사서를 쓰겠다’는 목표로 2011년 《사피엔스》를 히브리어로 출간했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탄생과 진화를 주제로 역사학·사회학·생물학·종교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내용이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 30여개 언어로 번역돼 역사서로는 드물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그를 단숨에 ‘스타 학자’ 반열에 올려놨다. 한국어판은 지난해 11월 출간된 뒤 22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들며 호평받고 있다. 그는 “《사피엔스》를 펴낸 뒤 세계 각국을 다니고 있는데 어느 지역에서든 고민하는 주제는 비슷하다”며 “AI와 지구온난화, 불평등 등 인류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하라 리 교수가 인류의 기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0대 때였다. 그는 “처음부터 그런 중후장대한 연구 주제에 다가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역사학도로서 인류 역사서를 쓰겠다는 꿈을 품고 열심히 준비했다”며 “대학 교수라는 안정적 직업을 얻은 뒤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고, 목표를 실현해나갔다”고 회상했다.
“책의 내용상 경제학이나 생물학같이 제 전공이 아닌 분야와 관련된 자료를 많이 읽어야 했습니다. 너무 심각해지지 않으려고 했어요. 유머를 갖고 재미있게 접근하려고 했죠. 모든 분야에 완벽해지겠다는 욕심이 있으면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꾸면 되고, 모르는 게 있으면 모른다고 하면 됩니다.”
그는 “미래 세대에겐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며 “지금처럼 지나치게 지엽적인 암기에만 집중하고, 세계사 지도에 소홀하면 역사를 통해 시대의 그림을 그려낼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스라엘의 역사 교육은 두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과 유대인 역사를 가르치는 것에만 치중하고, 두 번째는 다른 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린 학생들은 앞으로 현재 어른들이 겪지 못한 극단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겁니다. 거기에 대처할 수 있는 역동성을 길러주는 게 역사 교육의 역할입니다.”
그렇다면 하라리 교수가 예상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100~200년 정도 흐른 뒤엔 경제적 신분이 생물학적 특질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간과 사이보그의 결합 강화, 생명공학과 컴퓨터 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몸과 두뇌, DNA가 이제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변모해나갈 것”이란 게 그의 예측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육체적 자질을 결정하는 필연적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의 혜택이 빈부 격차와 직결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건 삶과 죽음, 생명 연장에 대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지요.”
사람의 마음과 의식에 대해서도 논했다. 하라리 교수는 “과거엔 지능이 높으면 의식 수준도 함께 높은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젠 지능이 높아도 의식은 없는 시대가 왔다”며 “아무리 성능이 좋은 슈퍼컴퓨터나 소프트웨어라 해도 의식은 제로(0)”라고 강조했다. “AI는 있어도 ‘인공지능’은 없습니다. AI에는 마음이 없죠.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국을 펼칠 때 불안과 기쁨을 전혀 느끼지 못했죠. 마음은 현대 과학이 아직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입니다. AI가 인간의 목소리나 얼굴 표정으로 감정을 분석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주관적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그는 “기술이 인간을 통제하게 된 것은 기술이 우리 인생에 뭔가 답을 주길 기대해왔기 때문”이라며 “삶의 목적을 기술이 정하게 만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AI와 지구온난화 같은 이슈는 200여개로 쪼개진 단일 국가 단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구촌 전체의 문제”라며 “모든 국가가 머리를 맞대고 평화롭게 대응할 수 있는 전 지구적 정치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하라리 교수는 “《사피엔스》를 통해 진정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건 내면의 행복과 자기 성찰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세상을 사유하고 질문하는 주체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진리가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채식주의자인 그는 하루 2~3시간 남방 불교의 대표적 수행법인 ‘위파사나 명상’을 한다. 또 1년 중 30~60일은 외부와 연락을 완전히 차단하고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나 자신이 누군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명상은 집중력을 높여주고 균형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거든요.”
다음달 1일까지 국내에 머무르는 그는 26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사피엔스, 인간은 정녕 쓸모 없어지는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28일에는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인류에게 미래는 있는가’를 주제로 독자와 만난다. 오는 9월엔 인간의 미래를 논하는 새로운 역사서를 영문판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이 책은 내년 중 한국어판으로 번역될 예정이다. 그는 “10~11세 정도의 학생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을 구상하고 있다”며 “역사를 알아야 현재와 미래를 그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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