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 맥과이어·에마 스미스 지음 / 박종성 외 옮김 / 한울아카데미 / 368쪽 / 2만3000원
[ 고재연 기자 ] 16세기 말 영국 런던 커튼극장. ‘로미오와 줄리엣’을 한창 공연 중인 극장에 공연물 감독관이 등장한다. ‘여성은 연극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법을 어기고 자신의 연인을 무대에 올린 셰익스피어를 체포하기 위해서다. 이때 몰래 공연을 보러 온 엘리자베스 1세가 나타나 셰익스피어를 비호한다. 1998년 개봉한 조지프 파인즈, 귀네스 팰트로 주연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한 장면이다.
셰익스피어는 이처럼 엘리자베스 1세의 총애를 받은 극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근거는 없다. 셰익스피어는 오히려 여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제임스 1세와 긴밀한 사이였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제임스 1세를 위해 스코틀랜드 역사의 한 장면을 가공해 쓴 작품이 《맥베스》다. 셰익스피어가 소속된 체임벌린극단은 제임스 1세 재임 시절 ‘왕실극단(The King’s Men)’으로 개명했다. 왜 후세 사람들은 제임스 1세와 셰익스피어의 관계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인 로리 맥과이어와 에마 스미스는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에서 “제임스 1세가 엘리자베스 1세만큼 신화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성적·정치적 추문으로 얼룩진 제임스 1세보다 ‘처녀 여왕’으로 영국 문화의 황금기를 연 엘리자베스 1세의 신화적 후광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의미다. 신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 기원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처럼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30가지 ‘신화’의 진위를 들여다본다. 나아가 그런 신화들이 어떤 맥락에서 발생했고, 사람들이 왜 그런 신화를 만들어냈는지도 짚어본다.
이 중 가장 오랜 기간 논란이 된 의혹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실제 그가 쓴 것인가’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담긴 법학 지식이나 궁정 문화에 대한 지식 수준이 시골 장갑장수 아들로, 스트랫퍼드 문법학교를 나온 셰익스피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짜 셰익스피어는 동시대 인물인 옥스퍼드 백작이나 프랜시스 베이컨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1922년 나탈리 라이스 클라크는 《셰익스피어 속에 있는 베이컨의 문자표》에서 “‘템페스트’의 에필로그에 우주론적 다이어그램을 덮어씌워 ‘나 W S는 F 베이컨이다’라는 암호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저자들은 “이들은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상상력의 영역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한다. 셰익스피어는 작품을 쓰기 전 수많은 역사서와 시문, 고대사, 철학서를 읽었다. 법 지식이 풍부한 것은 ‘툭하면 소송하기를 좋아하던’ 시대적 배경 덕분이다.
셰익스피어는 작품을 쓰기 전 수많은 책을 읽었고, 이를 작품에 적극 반영했다. 그의 작품에 ‘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은 이유다. 저자들은 “표절 여부는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한다. 지금은 ‘독창성’을 문학의 필수적인 자질로 인식하지만, 르네상스 작가들은 고전과 근대의 좋은 예들을 베끼는 모방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대신 셰익스피어는 원작을 자신의 방식대로 변형했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리어왕》도 동명 원작의 연극이 따로 있다. 그 작품에선 코델리아가 아버지를 구하고 여왕이 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코델리아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작품의 주제의식을 비틀어버렸다.
저자들은 “‘햄릿’의 주인공 이름은 죽은 아들 ‘햄닛’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가정 파괴범이었다” 등 사생활 소문에 대해서도 답을 내놓는다. 올해 서거 400주기를 맞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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