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 보고서는 지난 2월 발효된 교역촉진법상 환율조작국 기준에 구체적 수치까지 계량화했다. 즉, ①현저한 대미(對美) 무역흑자(200억달러 초과) ②상당한 경상흑자(GDP 대비 3% 초과) ③지속적인 일방향 시장 개입(연간 GDP 대비 2% 초과 순매수) 등이다. 한국은 대미 무역흑자 283억달러, 경상흑자 GDP의 7.7%, 달러 순매수 0.2%로 ①, ②에 해당됐다. 미국은 최근 9개월간 한국의 시장 개입이 260억달러라고 특정할 만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다.
환율은 미국이 지난해부터 수시로 제기해온 문제다. 올 2월 제이컵 루 재무장관이 유 부총리에게 “한국의 환율정책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는 경고성 발언까지 던졌다. 그는 기고문에서 ‘약탈적 절하’라는 표현까지 썼고 최근 일본에 대해 “외환시장에 개입할 명분은 없다”며 제동을 걸었다. 그간 엔저(低) 묵인과는 정반대다. 일본은행이 예상과 달리 추가 금융완화를 하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했다고 안도할 일이 결코 아닌 이유다.
더구나 지금 미국은 대선 과정에 있다. 막대한 대미 흑자를 내는 나라들이 불공정한 환율정책을 편다는 의심이 공공연히 제기된다. 공화당 유력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한국을 ‘경제 괴물’로 지칭하고 “중국이 (미국의) 피를 빨아먹고 있다”고 비난하는 판이다. 대선 경쟁이 가열될수록 미국의 성장 둔화와 무역적자 확대 원인을 나라 밖에서 찾을 공산이 크다. 그 ‘시범 케이스’를 찾는다면 상대적으로 만만한 한국과 대만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수출이 16개월째 뒷걸음질인 마당에 원화 절상 가능성이 열린 것은 무척 부담스럽다. 미 재무부는 외환시장 개입을 ‘무질서한 시장 환경 발생 시’로 제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예민한 시기에는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대미 무역흑자의 상당 부분이 서비스적자로 상쇄된다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차제에 ‘한국형 양적 완화’란 표현도 오해없도록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 환율은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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