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로 덩치 키워도 후발주자에 추월 당해
기술 생존주기 짧아져…혁신만이 돌파구
[ 로스앤젤레스=이심기 기자 ]
“디지털 기술이 금융과 투자를 비롯한 기존의 모든 비즈니스 규칙을 단숨에 파괴할 것이다.” 월가 금융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가 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힐튼호텔에서 사흘간 일정으로 개막했다. 올해 19회째인 콘퍼런스의 주제는 ‘인간의 미래’로 설정됐으며 파괴를 뜻하는 ‘디스럽션(disruption)’이 최대 화두로 제시됐다.
○10년 내 사라질 기업·제품 수두룩
니케시 아로라 소프트뱅크그룹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날 ‘디지털 다윈이즘’ 세션에서 “앞으로 10년 안에 사라질 기업과 제품을 생각해보라”고 질문을 던졌다.
참석자들은 현금과 신용카드가 디지털 화폐에 밀려 없어질 것이라고 답했고, 무인자동차가 맥炸?玖庸?운전기사 역시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소매 판매점도 온라인과 모바일 판매에 밀려 존재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아로라 COO는 바로 옆자리에 토론자로 나온 존 첸 블랙베리 최고경영자(CEO)에게 “휴대폰은 존재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사회를 맡은 앤디 서워 야후파이낸스 부사장에겐 “야후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어떻게 진화할지 예측하기 불가능한 디지털과 인터넷이 기존 산업의 지형과 제품 주기를 급격히 바꿔놓는다는 게 질문 의도였다.
마크 와인버거 언스트앤영(EY) CEO는 “회사에 몸담은 지 30년 됐지만 요즘과 같은 불확실하고 파괴적인 양상을 경험하지 못했다”며 “거대한 다국적 기업은 물론 신흥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고 말했다.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우더라도 디지털 기술이 순식간에 기업의 지위를 바꿔놓을 수 있다고 그는 관측했다.
○“금융산업도 무풍지대 아니다”
조지프 훌리 스테이트스트리트 회장은 금융과 정보기술(IT)을 융합한 핀테크의 발전이 기존 은행시스템을 뒤흔들어 놓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중국 알리바바의 전자결제시스템 알리페이를 예로 들었다. “휴대폰으로 개인 신용도를 점검해 대출을 받고, 현금 없이도 온라인쇼핑으로 TV를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했다. 실시간으로 개인정보에 접근해 곧바로 경제활동에 연결시키는 핀테크는 은행이 따라갈 수 없는 비즈니스모델이라고 강조했다.
로봇을 활용한 금융정보 분석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켄쇼의 대니얼 나들러 CEO는 “로보 어드바이저가 단순 금 떼?洲?직종뿐만 아니라 연봉 수십만달러를 받는 금융전문가까지 ‘멸종’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인공지능을 갖춘 로보 어드바이저가 리서치 인력과 투자분석가를 대체하고 있다”며 “금융산업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도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디지털 적자생존 돌파구 ‘혁신’
‘디지털 다윈이즘’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라는 적자생존 법칙에 의해 경쟁력 없는 기업과 제품이 사라지고 새로운 기업과 제품, 시장이 출현하는 진화를 뜻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체 중 하나인 하니웰의 데이비드 코트 CEO는 “지난 40년간 진행된 디지털 혁명은 이제 시작 단계”라며 “기술의 생존주기는 그 어느 때보다 짧아졌다”고 진단했다. 디지털 적자생존시대의 돌파구로는 “끊임없는 혁신”을 주문했다.
그는 “올해 설립 110년을 맞은 하니웰은 더 이상 엔지니어 회사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며 “절반 이상의 엔지니어가 소프트웨어 개발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소개했다.
케빈 터너 마이크로소프트(MS) COO는 “디지털 기술이 전통기업의 비즈니스모델을 통째로 바꿔버리기도 하지만 기존 사업을 무한대로 확장시킬 수 있다”며 융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미국 밀컨연구소가 1998년부터 매년 4월 말~5월 초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여는 투자자 포럼이다. ‘미국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린다. 밀컨연구소는 1980년대 ‘정크본드의 제왕’으로 군림한 마이클 밀컨(70)이 설립했다. 밀컨은 당시 고위험·고수익 채권인 정크본드시장을 개척했지만 이후 주가 조작과 내부자거래 혐의로 2년간 복역한 뒤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로스앤젤레스=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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