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신동에 사는 직장인 A씨는 지난 주말을 바쁘게 보냈다. 수족관에 가고 프로야구 경기도 관람했다. 전문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하고, 요리 수업도 들었다. 이것저것 알차게 경험했지만 집을 떠난 적은 없다. 모두 집 안에서 스마트폰과 구글 카드보드 헤드셋을 이용해 가상현실(VR) 콘텐츠로 즐겼기 때문이다. MBC VR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을 찾았고, kt위즈의 앱으로 수원에서 열린 kt위즈와 삼성 라이온즈 경기를 VR 생중계로 봤다. LG유플러스의 LTE 비디오포털 앱에서 요리와 운동 영상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생각보다 더 생생하다”
생중계 영상을 본 첫 소감은 ‘생각보다 더 생생하다’였다. 종이로 제작된 VR 헤드셋을 쓰자 수원구장의 드넓은 광경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고개를 들자 뻥 뚫린 하늘이 눈에 들어왔고, 뒤편 관중석에선 신나는 환호 소리와 함께 응원석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좋아하는 선수가 대기타석에서 스윙하는 장면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고개를 뒤로 돌리자 치어리더들이 코앞에서 응원하고 있었다.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느껴져 연신 손을 뻗어보기도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괴짜들 ?공상’쯤으로 여기던 VR 콘텐츠가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엔터테인먼트 관광 의료 교육 등 일상생활과 산업 전반에서 VR을 활용한 콘텐츠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기업들도 VR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VR 마케팅’도 인기
글로벌 경매회사 소더비는 지난해 말부터 VR 영상으로 고급 주택 매물을 보여주고 있다. 매물을 한곳에 모을 수 없는 부동산 경매의 단점을 VR로 보완한 것. 덕분에 경매 참여자는 집안이나 사무실에 앉아서 매물을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미국 유통업체 로스는 지난해 11월 19개 점포에서 ‘홀로룸(Holoroom)’ 서비스를 시작했다. 집안 리모델링을 원하는 고객이 전용 헤드셋을 쓰면 눈앞에 가상현실 공간이 나타난다. 벽지, 바닥재, 가구 등을 바꿔가며 인테리어 완성본을 미리 볼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월 보고서에서 “VR이 각 분야의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바꿀 수 있다”며 “부동산 중개 시장, 유통업계의 점포 운영 방식 등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면 유통업계에서 점포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작은 가게에서도 VR 콘텐츠를 이용하면 초대형 매장만큼 상품을 전시할 수 있어서다.
관광 홍보에서 심리훈련까지
국내 지상파 방송들도 VR 콘텐츠 제작에 팔을 걷어붙였다. 먼저 주목한 것이 광고용 360도 동영상이다. MBC는 지난달 7일 광명동굴을 소개하는 관광지 홍보 영상 ‘VR여행 라니아의 동굴모험’을 공개했다. 동굴 내부 풍경과 라니아의 공연에 용과 좀비가 나오는 모험 이야기를 더했다. SBS는 최근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홍보 영상을 VR로 제작했다. 360도 영상으로 세트장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게 했다. 드라마 제작 과정을 궁금해하는 팬들을 위해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VR을 이용한 심리훈련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사연을 공모해 뽑힌 두 젊은이가 고소공포증 개선에 나섰다. 방에 앉아있는 상태에서 VR 화면을 통해 건물 옥상 등 높은 곳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했다. 이들은 8주 뒤 실제 고층 빌딩 옥상에 올라가 빌딩과 빌딩 사이에 놓인 줄을 건너는 스카이워크 체험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VR 콘텐츠의 매력이 특별한 배경 지식이나 준비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체험’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 영상이나 사진보다 훨씬 흥미를 끈다는 것도 장점이다. VR 게임 ‘침묵의 문’을 개발한 주세페 벨피오레는 “VR 기술은 콘텐츠와 이용자의 관계를 완전히 재정의한다”며 “똑같은 내용의 콘텐츠라도 실제 상황인 것처럼 체험할 때 이용자의 몰입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VR (가상현실) 이 뭐지?
virtual reality. 컴퓨팅 그래픽 등 인공기술로 구현한 가상의 세계. 3차원(3D) 영상은 특수 안경으로 입체감과 원근감을 느끼는 ‘착시 효과’를 이용한다. VR 영상은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헤드셋을 쓰고 관람한다. 3D 영상보다 몰입감이 훨씬 높다. 영미권에서는 VR 영상 경험 느낌을 표현하는 ‘몰입감(immersiveness)’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선한결 한국경제신문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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