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부활·정쟁 격화 우려도…증시 급락
[ 양준영 기자 ]
9일 치러진 필리핀 대통령선거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71)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잇단 막말과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필리핀의 트럼프’로 불렸지만 ‘범죄와의 전쟁’을 내세워 경제난과 범죄,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의 표심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필리핀의 트럼프’ 압도적 승리
현지 ABS-CBN 방송은 이날 오후 9시20분(현지시간) 현재 약 57%의 개표가 이뤄진 가운데 민주필리핀당 후보인 두테르테 시장이 1159만표를 얻은 것으로 비공식 집계됐다고 밝혔다. 무소속의 그레이스 포 상원의원(47)은 657만표, 집권 자유당(LP) 후보인 마누엘 로하스 전 내무장관(58)은 651만표를 기록했다. 제조마르 비나이 부통령(73)은 392만표에 그쳤다. 선거감시단체 PPCRV 집계에 따르면 두테르테 시장은 38.9%의 득표율을 기록, 포 의원을 450만표 이상 앞서면서 사실상 당선을 확정지었다.
검사 출신인 두테르테 시장은 선거 초반에는 군소 후보에 불과했지만 잇단 막말로 대중과 언론의 체굼?끌고 파격적인 개혁 정책으로 유권자를 사로잡았다. 그는 작년 1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필리핀 방문 때 도로 통제로 교통 체증이 빚어지자 교황을 향해 욕을 했다가 사과했다. 지난달 유세에서는 1989년 다바오시에서 발생한 교도소 폭동 당시 집단 성폭행을 당해 숨진 호주 여성 선교사에 대해 “시장인 내가 먼저 해야 했는데”라고 말해 국제적인 비난을 샀다.
자질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한 것은 강력한 범죄 근절 공약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는 22년간 다바오 시장을 지내면서 마약상과 같은 강력범 즉결 처형 등 초법적인 범죄 소탕을 벌였다. 다바오는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가 됐고 그는 ‘징벌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두테르테 시장은 “모든 범죄자를 처형하겠다”며 대통령 취임 6개월 내 범죄 근절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워 치안 불안과 부패한 기성정치에 지친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깨끗한 정부를 만들겠다”며 곳곳에 찌든 부패 척결도 예고했다.
○정치적 긴장 우려에 금융시장 불안
그러나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며 정책을 밀어붙이는 그의 스타일이 ‘공포정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민층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중앙 정치무대 경험이 별로 없고 유력 정치가문 출신이 아닌 만큼 정책 입안과 추진 과정에서 기득권층과의 갈등도 예상된다. S&P글로벌은 “두테르테가 다바오시를 운영하던 방식은 저항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며 “정쟁이 심각해지면 베니그노 아키노 정부가 이뤄낸 정치적 안정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키노 대통령 취임 후 6년간 필리핀 경제는 연평균 6.2% 성장하며 ‘아시아의 병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두테르테 시장 당선 후 정치·경제적 불안으로 최근 호전되고 있는 필리핀 경제가 암초를 만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두테르테 시장의 당선이 유력해지면서 필리핀 증시는 3월 고점 대비 5% 이상 하락했다. 해외 투자자들은 4월에만 3400만달러의 자금을 빼갔다. 필리핀 페소화 가치는 최근 3주 동안 2% 이상 하락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경제 분야 경험이 거의 없고, 범죄와 ‘피의 전쟁’을 선언한 두테르테 시장에 대해 투자자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며 “시장이 쉽게 안정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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