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본질·사명 자각 바탕 실용가치 추구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만남처럼 융복합"
<대담 최인한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 겸 한경닷컴 뉴스국장>
[ 김봉구 기자 ] “드셔보세요. 절 떡이라 맛있습니다.” 강성영 한신대 신임 총장(사진)이 인터뷰 도중 떡을 권했다. 떡을 쪄 돌린 화계사는 서울 수유동 한신대 신학대학원과 붙어있다. 종교간 벽을 허무는 협력과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 한신대 특유의 학풍이 엿보였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재단인 한신대는 김재준·문익환 목사, 장준하 선생을 배출한 진보 신학의 산실이다.
이미 임기를 시작했으나 정확히는 총장서리다. 학내 의견 대립이 불거진 탓에 총장 선출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강한 비바람이 들이친 지난 3일 오후 만난 강 총장은 담담했다. 앞으로 4년간 만들어갈 한신대의 비전을 차근차근 풀어 보였다.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대학으로 만들고 싶어요. 한신대가 모교인 저 같은 사람은 ‘한신은 진리’라고 말하곤 합니다.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곳이죠. 인권과 민주화, 평화와 통일을 화두 삼아 책임 있는 기독교대학의 길을 걸어왔어요. 대학 규모나 서열상의 명문대가 아니라 가치를 선도하는 대학으로서 명문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실천지성’ 인재상의 작지만 강한 대학을 목표로 삼았다. 그동안 한신대가 쌓아온 인문학적 소양의 기독교적 가치 토대 위에 실용 학문을 더한 특성화 모델을 추구한다. 학부가 위치한 오산캠퍼스, 신학과 사회적 경제 중심의 융복합 종합대학원을 지향하는 서울캠퍼스를 두 축으로 대학발전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강 총장은 “대학이 신자유주의 시장체제에 편입되면서 진리 탐구, 사회적 실천 같은 대학의 본질과 사명을 잊고 있다. 여기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동시에 대학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자기 삶의 진로를 설계해 사회에 진출하는 역량도 길러야 한다. 시장에 치우치지 않고 도덕적 가치에만 몰입하지도 않는 균형감이 지금 대학들의 과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신학과 교수인 강 총장은 특히 내년 500주년을 맞는 종교개혁 사례를 들어 대학의 융복합 필요성을 강조했다. ‘교회는 타인을 향할 때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교회갱신 운동인 종교개혁과 중세 세계관을 바꾸는 르네상스 운동이 결합해 근대의 시작을 열었죠. 그때 종교적 인문주의와 세속적 인문주의가 만난 공간이 대학이었습니다. 지금 한신대가 감당할 소명도 다르지 않다고 봐요. 기독교적 가치와 실용적 가치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어가려 합니다.”
- 총장이 됐습니다. 학교를 어떻게 이끌어나갈 생각입니까.
“한국사회에서 한신대가 걸어온 길은 의미 있었다고 봅니다. 인권과 민주화, 평화와 통일 같은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는 책임 있는 기독교의 모습을 보였어요. 한신대를 거쳐 간 많은 분들이 나름의 역할과 소명을 감당했습니다. 한신의 전통과 유산을 잘 계승하면서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고심하고 있어요. 총장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이 막중합니다.”
- 제가 1980년대 학번인데 당시엔 한신대 출신의 구루(guru: 정신적 지주) 같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실천지성’을 비전으로 내걸었던데요.
“임기가 개교 80주년인 2020년까지예요. 한국 대학들이 환경 변화로 위기를 맞은 시기와 일치합니다. 그 파고를 한신대도 피해갈 수 없어요. 다만 외부로부터 강요된 방식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능동적·자발적 구조혁신으로 체질을 바꿔나가려고 합니다. 대학 구성원들과 함께 ‘생존을 넘어 도약하는 대학’을 목표로 정했죠.”
- 구체적 계획이 궁금합니다.
“오산캠퍼스는 기독교 명문사학으로, 서울캠퍼스는 신학을 중심으로 융복합 전공을 결합해 종합대학원으로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서울캠퍼스의 경우 사회적 경제, 시민운동, 공공성 같은 가치를 키워드로 특성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로도 선정됐어요. 양 캠퍼스를 축으로 융복합을 통한 대학 발전에 박차를 가할 생각입니다.”
- 오산캠퍼스의 특성화학과나 프로그램도 소개해주세요.
“정조대왕을 따 명명한 리버럴아츠칼리지 ‘정조교양대학’이 있어요. 인성과 기독교, 인문적 소양을 가르치는 과목들이 개설됐습니다. 책읽기나 글쓰기가 핵심 커리큘럼이죠. 신입생 세미나와 대학생활 멘토링 프로그램, 진로·취업 상담제 등을 마련했어요. 모든 학생이 1학년 때부터 지도교수를 배정받아 면대면 상담 기회를 갖습니다. 학생 관리에 역점을 둔 제도입니다.”
- 기초 소양뿐 아니라 실용도 중요한데요. 특히 주력하는 분야가 있습니까.
“한중문화산업대학이 대표적인데요. 중국과의 교류 확대에 초점을 맞춰 융복합 단과대로 신설해 중국 관련 학과들을 모았습니다. 한류산업 시장이 커지고 있잖아요. 인문학과 IT(정보기술) 융합을 통해 새로운 수요에 적합한 전공단위를 만든 겁니다.”
- 학생 자원은 줄고 경쟁은 치열해집니다. 한국 대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뭘까요.
“대학의 본질과 사명이 무엇인지 많이 잊어버린 것 같아요. 이에 대한 자각이 필요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마지막 보루가 대학이니까요. 하지만 대학이 도덕적 가치에만 골몰해서도 곤란하죠. 대학은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자기 삶을 일궈나가도록 도울 의무가 있어요. 결국 근본적 가치와 실용성을 어떻게 균형 있게 가져갈지가 지금 우리 대학들의 과제라 생각합니다.”
- 대학평가가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 않죠.
“대학평가를 평가 瞞?합니다. 기존 평가는 서울 소재 대형 대학에 유리하게 맞춰져 있는데, 비슷한 환경의 대학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가장 중요해요. 구성원들의 대학발전 노력 같은 정성적 지표도 정확하게 평가됐으면 합니다. 대학이나 전공 특성을 감안해 평가가 적합하지 않은 곳은 제외하고, 대학별 평가보다는 학과별 평가 방향이 바람직하죠.”
- 2~3년 전만 해도 대학들이 취업 우선, 실용 중심을 얘기하다가 최근 들어 다시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경향도 보입니다. 한신대는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두는지요.
“기독교적 가치와 정신, 약자에 대한 배려, 사회적 정의 구현… 한신의 역사가 곧 정체성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선 타인에 대한 존중, 생명에 대한 경외 같은 품성을 갖춘 인재가 요구되죠. 이런 가치들이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치유하고 해결하는 ‘미래 리더십’을 길러내는 것 아닐까요. 한신의 인재상이 곧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예전에 비해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위축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또 하나는 반(反)지성주의죠. 종교가 비판적 정신이나 학문적 자유를 억압하면 안 돼요. 내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신학 연구자 입장에서 본 종교개혁은 교회갱신 운동이었고 르네상스는 중세 세계관을 뒤바꾸는 패러다임의 전환이었어요. 두 운동이 대학을 매개로 결합되면서 근대의 시작을 열었죠. 이같은 세속적 인문주의와 종교적 인문주의의 결합이 기독교 대학이 해야 할 일이라 봅니다.”
- 일반인들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형교회 건물 신축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더군요.
“한국 교회가 반성해야 할 대목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 자기를 위해선 안 되는 것이죠. 세상을 구한 그리스도의 삶처럼 교회는 타자를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대형교회를 짓기에 앞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써야 할 몫이거든요. 500여년 전 종교개혁 정신이 다시 필요합니다.”
- 종교간 벽을 허무는 노력이 인상적입니다.
“학교 차원에서 17~18년 전부터 난치병 어린이 돕기 바자회를 열고 있습니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가 함께요. 지금까지 10억 원 가량 모아서 중증질환 어린이 300명을 도왔죠. 학교 교과서에도 종교간 협력모델 사례로 나오는 걸로 압니다. 조금 전에도 화계사 스님과 점심식사를 하고 왔어요. 종교들이 힘 모아 사회에 기여하는 노력이 더 커져야죠.”
- 상당수 대학이 총장 선임 과정에서 갈등을 빚는데 어떤 방식이 좋다고 보는지요.
“사립대는 대부분 간선제를 택하고 있죠. 법인의 영향력 행사 측면도 있겠지만 총장 선출에 따른 지나친 혼란을 막자는 게 원래 취지입니다. 이번에 우리 대학에선 직선제 형식 후보자 추천투표가 진행되고 이사회에 전달해 문제가 됐는데요. 절차의 적법성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구성원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 계획입니다.”
- 한신대가 추구하는 차별화·특성화 방향은 뭔가요.
“명문대는 규모나 대학 서열로 정하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학생들이 자부심 갖고 동문은 모교를 자랑하며 교직원은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명문대 아닌가 싶어요. 작지만 강한 대학, 인문학 소양의 기독교적 가치를 구현하는 교육 체계를 가진 대학, 기초학문 위에 실용적 가치를 결합해 특성화한 대학, 그래서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대학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한신대는 어떤 대학인지 소개해주시죠.
“한신대는 기독교대학입니다. 진실된 기독교정신은 편협하고 이기적인 인간을 만들어내지 않아요.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 자연에 대한 예의를 기본으로 함께 살아가는 인간, 실천적 지성을 길러내는 게 목표입니다. 한신의 교육은 다른 사람을 딛고 성공하는 인간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인성과 감수성, 도덕성을 지닌 사람으로 크도록 응원하고 도와줍니다.”
- 마지막으로 신입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권하고 싶어요.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 같은 당시 종(種)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인류 문명사의 큰 전환점을 잘 짚었다고 평가합니다. 학생들 시야를 넓혀줄 만한 책이에요. 또 하나는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고 버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피곤함을 얘기해요. 현대사회에서의 미니멀리즘(단순함·간결함 추구)을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권합니다.”
◆ 강성영 총장은…
한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독일 하이델베르그 루페르트 카롤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교 교수로 부임해 신학대학장, 신학대학원장, 장공도서관장 등의 학내 보직을 거쳤다. 한국기독윤리학회 부회장, 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 이사 겸 학술위원, 강제장학재단 이사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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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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