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불안이 키운 미국 '트럼피즘'

입력 2016-05-11 19:13  

Wide & Deep - '트럼프 신드롬' 핵심은 일자리 부족

외국인 노동자·낮은 임금에 분노
백인 남성 경제활동참가율 최저
"일자리 되찾겠다"는 공약에 열광



[ 이정선 기자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2000년 기술업종 일을 한 개리 리스 씨는 연봉 12만달러(약 1억4000만원)를 벌었다. 보너스와 스톡옵션도 따로 있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을 때 그의 급여는 절반으로 깎였다. 올해 61세가 된 그는 직업이 없다. 생계를 위해 여전히 일자리를 찾아야 하지만 녹록지 않다. 개리씨는 리먼사태 이후 미국의 수많은 중년 백인남성이 겪고 있는 고용부진 상황을 잘 대변하는 사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경기침체가 7년 전 끝났지만 지속되는 실직과 고용불안이 미국인에게 경제적, 정신적인 상처를 남기면서 정치·사회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고 11일 보도했다.

무엇보다 정체된 임금 수준에 대한 분노가 공화당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의 열풍에 기름을 붓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막말 정치인이지만 백인 보수층의 권익을 적극 옹호하는 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공감하는 ‘트럼피즘(Trumpism)’ 현상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유세현장에서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으로 묘사하거나, 멕시코 불법이민자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중년 백인남성의 분노와 상실감이 트럼피즘의 배경이 되고 있다는 증거는 미국 럿거스대 존 헬드리치 노동력개발센터가 2010년 9월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리먼사태 이후 높은 실업률 원인을 물었을 때 응답자는 ‘값싼 외국인 노동력’ ‘불법이민’ ‘월가 은행가들’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리먼사태가 한창이던 2007년 12월~2009년 6월 4000만명의 근로자가 해고됐다. 지금도 1400만명이 일자리를 찾거나 시간제 일자리에 매달리고 있다. 25~54세 백인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도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추세다.

미국의 지난 4월 기준 실업률은 5%로 2010년 10%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WSJ는 해고된 사람들이 정규직으로 복직하지 못하고 시간제 일자리의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임금절벽’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임금상승률은 지난달 1일 기준 3.2%로 7년 가까이 정체상태다.

WSJ는 또 실직자 자녀의 학교 시험성적이 고용이 안정된 부모의 자녀보다 떨어지고, 향후 자녀들이 취업했을 때 임금은 9% 더 낮았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해 전했다. 리먼사태 이후 대량해고로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여전하다는 것도 미국 사회의 숙제로 꼽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1999~2014년 자살률은 이전보다 24% 증가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은 “경기침체로 자살과 약물남? 경제적 스트레스에 따른 간질환 등이 증가해 미국 중년 백인의 사망률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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