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은행권에서는 갑자기 빅배스라는 단어가 자주 회자됩니다. CEO 교체 시기도 아닌데 말이죠. 이유는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때문입니다.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작정한 듯 “농협금융의 건전성을 위해 누군가는 빅배스를 감행해야 한다. 충당금 부담을 빅배스로 정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거든요.
조선·해운 등 취약 업종 관련 부실로 인해 제대로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농협금융의 주력 계열사 농협은행의 현실을 감안해서입니다. 대규모 적자를 입더라도 최대 수조원대에 달할 수 있는 충당금을 쌓아 취약 업종 대기업 여신 부실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였죠.
농협은행은 조선·해운업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금융회사입니다. 업황 침체를 이겨내지 못한 일부 기업의 법정관리 신청 등으로 거액의 충당금을 쌓으면서 올 1분기 순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분의 1로 줄었거든요.
사실 농협은행은 농민의 은행이라는 설립 취지가 무색하게 조선·해운업에 여신의 상당 부분이 치중돼 있습니다.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과 달리 농업계 특수은행인데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기업에 대규모 금융지원이 이뤄질 때마다 빠짐 없이 참여한 영향입니다.
우리은행이 은행 건전성 관리 등을 이유로 성동조선해양이나 STX조선해양 채권단에서 빠지는 것과 달리 농협은행은 더 높은 수준의 공공성을 강요 받아온 게 사실이거든요. 물론 시중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리스크 관리로 인해 제 때 대기업 여신 포트폴리오를 조정하지 못한 탓도 크지만 말입니다.
이렇다 보니 정작 본연의 목표인 농업 부문에 대한 금융지원에는 소홀해졌다는 자기 반성이 최근 크게 부각됐다고 합니다. 지난 3월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취임하면서 이런 분위기가 더 강해졌죠. 농업인을 위한 농협을 유독 강조해서랍니다. 농협금융 계열사들에 농심(農心)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아쉬움을 계속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이런 배경도 ‘빅배스 카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생각입니다.
농협금융의 지분 100%를 갖고 있는 농협중앙회도 김용환 회장의 빅배스 의지에 일정 부분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습니다. 농협금융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면 농협중앙회에 배당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조합원들의 동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상당수 지역 농협이 농협금융의 배당금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라 조합원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출범 때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강한 만큼 농협은행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끝)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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