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브리즈도 비슷한 성분" 논란…P&G "안전성 철저 평가" 반박
(2) 원물질 제조 SK케미칼은 책임 없나
검찰 "SK케미칼 원료 유해성 알려…옥시 측이 무시했을 가능성 커"
(3) 재발 막을 수 있나
새 화학물질 '규제 사각지대'…유해성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워
(4) 영국 본사 RB는 왜 침묵했나
RB, 본사엔 영향 없다 판단?…한국지사의 문제로 선 그어
[ 전설리 기자 ]
최근 생활용품 판매업체에는 각종 세제 관련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화학물질이 얼마나 들어있느냐’ ‘안전하냐’는 등이다. 옥시 사태가 가져온 불신이 산업계 전반으로 퍼졌다. 제조업체와 판매업체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간 사태의 책임을 누가 져야 할 것인가를 두고 책임 공방을 벌인다. 옥시 사태를 둘러싼 네 가지 의문점을 정리해봤다.
다른 세제는 안전한가
옥시 사태가 탈취제 방향제 섬유유연제 표백제 등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 방향·탈취제 페브리즈도 그중 하나다.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유해성분(PHMG)과 비슷한 성분(BIT)이 들어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보건대 교수는 “페브리지의 유해성은 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린다”며 “다른 화학물질과 섞이면 위험해질 수 있어 안전관리를 보다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페브리즈를 생산·판매하는 한국P&G는 “모든 제품은 철저한 안전성 평가를 거친다”며 “논란이 되는 성분은 화학 물질 관리가 까다로운 미국 일본 유럽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화학제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소비자 스스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환경컨설팅사 EHR&C의 이종현 환경보건안전연구소장은 “의약외품으로 분류된 제품들은 사전 안전 점검을 통과해 안심하고 사용해도 되지만 살균제와 방충제 등 살생 제품은 사전허가제가 도입되지 않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물질 제조한 SK케미칼은 책임 있나
SK케미칼은 1994년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판매했다. 2011년엔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인 PHMG를 제조해 원료물질 공급사 CDI를 통해 옥시에 팔았다. 이미 알려진 대로 원료물질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완제품도 직접 제조·판매한 것이다.
1994년 당시 유공(현 SK케미칼)은 “국내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애경산업과 유통계약을 맺고 팔기도 했다. 이 제품의 원료는 CMIT와 MIT다.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PHMG와 달리 CMIT는 폐질환과 관련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제품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있어 환경부가 재조사에 나섰다.
검찰은 SK케미칼이 PHMG를 판매하며 원료 유해성을 제대로 알렸는지에 대해 수사 중이다. 유공은 1996년 12월 PHMG를 제조·신고하면서 “PHMG는 항균 카펫 등에 첨가제로 사용하며 피부 접촉 시 오염된 옷을 벗고, 충분한 비눗물로 오염된 곳을 씻어야 한다”고 신고서에 적었다. PHMG를 판매하며 이런 유해성을 알렸으나 옥시가 무시한 채 안전성 검사 없이 원료로 이용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 피해자는 “SK케미칼이 유해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PHMG를 판매한 것은 잘못”이라며 전·현직 임원 14명을 지난달 검찰에 고발했다.
‘규제 사각지대’서 발생, 재발 가능성은
전문가들은 옥시 사건과 같은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사전 적용 대상을 1t 이상으로 정한 이유다. 용도를 바꿔 사용하는 사례도 있어 경우의 수는 더 늘어난다. 문제가 된 PHMG의 용도는 원래 바닥 청소제다. 바닥 청소용 화학물질 가운데 유해성이 낮은 편이다. 이를 에어로졸 형태로 사용하면서 치명적인 유해 물질로 바뀌었다.
정부 관할 경계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규제 사각지대도 문제란 지적이다. 예컨대 방향제 에어컨 살균제 항생제 등 공산품은 산업통상자원부가 관할한다. 유해성을 판단할 수 있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소관이 아니다.
모범기업 RB 미스터리
옥시레킷벤키저의 모회사 레킷벤키저(RB)의 위기관리 방식이 미스터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RB는 미국 다우존스가 선정하는 지속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들어있고, 영국에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 중 하나다. 이런 기업이 수많은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RB가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잘못된 보고를 토대로 영국 본사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에 개입하지 않았고, 이 사태가 본사의 주가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라케시 카푸어 RB 최고경영자(CEO)가 “개인적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런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한 게 전부다. 한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기업의 평판에 금이 갈 만한 사안에 본사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정보를 보고받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영국 본사가 ‘평판 위기’가 한국에서 다른 국가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에서 촉발된 불매운동이 세계 시장으로 번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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