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가족 셋을 잃고 비로소 인생을 깨달은 작가…"우정은 말 없이도 마음을 나누는 것"

입력 2016-05-13 19:09   수정 2016-05-30 10:29

(21) 칼릴 지브란 '예언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엘리엇, 예이츠의 시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집으로 평가된다. ‘현대의 성서’로 불리는 《예언자》를 시집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잠언록으로 분류하는 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소설 형식으로 보기도 한다.

오팔리즈에 12년 동안 머물며 자신을 고향 섬으로 데려다 줄 배를 기다리던 알무스타파는 신의 선택과 사랑을 받은 자이다. 안개를 헤치고 배가 다가오자 알무스타파는 떠날 결심을 한다. 하지만 긴긴날 고통에 몸부림치고 긴긴밤 고독에 사무친 기억이 스쳐 지나가자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만물을 품 안으로 불러들이는 바다가 부르니 이제 배에 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예언자 알무스타파가 기다리던 배가 왔다는 소식에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대는 우리의 황혼 속에서 한낮의 빛이었으며, 그대의 젊음은 우리를 꿈꾸게 했습니다”라며 떠나지 말라고 간청한다. 하지만 알무스타파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대의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주십시오.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대가 보았던 모든 것을 알려주십시오”라며 아쉬움을 달랜다.

선지자 알미트라, 아이를 품에 안은 여인, 부유한 자, 농사꾼, 석공, 베 짜는 직공, 웅변가, 여사제, 천문학자, 교사, 법률가, 원로 등등 여러 사람이 나서서 26가지 질문을 한다. 알무스타파는 질문에 답변한 뒤 배에 올라 작별을 고한다. “나는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잠시만 있으면 바람결에 한숨을 돌리다가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을 것입니다”는 말을 남기고.

사랑, 결혼, 기쁨과 슬픔, 선과 악, 우정, 즐거움, 아름다움, 집, 옷, 사고파는 것 등 다양한 질문에 과연 어떤 답변을 했기에 1923년에 출간된 《예언자》가 지금까지도 뜨거운 사랑을 받는 걸까. 이 책은 40여 개 언어로 번역돼 1억 부 이상 판매된 전 세계인의 애독서다.

20년 동안 고쳐 쓴 예언서

《예언자》는 지브란이 20여 년에 걸쳐 집필했다. 스무 살에 쓴 초고를 들고 다니며 생각날 때마다 고쳐 쓰고 다듬었다는 얘기다. 출판 직전에도 다섯 번이나 고쳐 쓴 다음에야 비로소 원고를 넘겼다고 한다. 26개의 질문을 스스로 정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만드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온 영혼을 바쳐 다듬은 답변이 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기에 지금까지 《예언자》가 큰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에 훈수를 두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엄청난 삶의 질곡을 거치면서 신의 위로를 받아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지브란이라면 자격이 충분하다.

살면서 누구나 고난을 당하지만 지브란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은 이는 드물다. 그는 1883년 레바논 베샤르에서 태어났다. 12세 때 세무관리였던 아버지가 세금을 잘못 관리한 죄로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투옥된다. 그러자 어머니는 자녀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15세 때 고국 레바논으로 돌아온 지브란은 아랍문학을 공부하며 그간의 향수를 달랜다.

19세 때인 1902년, 미국으로 돌아가던 중 누이동생 술타나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이듬해 3월에 형, 6월에 어머니가 연이어 세상을 떠난다. 2년 동안 세 명의 가족과 이별하는 일은 웬만해서는 이겨내기 힘든 고난이다.

그는 고통을 잊기 위해 그림에 몰두했고, 1904년에 전시회를 열었다. 거기서 연인이자 후원자인 메리 해스켈을 만나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지브란은 26세 때 첫 책을 출간한 이후 여러 권의 책을 냈고, 40세 때인 1923년에 《예언자》를 출간했다. 20여년 동안 가족을 잃은 슬픔을 삭이며 인생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하는 가운데 스스로 답변을 찾은 것이다. 그가 수수께끼 같은 인생에서 얻은 해답이 《예언자》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쉼 없이 공부할 때 꿈의 한 조각 이룰 터

청소년 시절은 사랑보다 우정에 더 관심이 많은 시기다. 한 젊은이가 “우정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지브란은 “친구는 그대들의 소망을 채워주는 존재”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침묵할 때에도 그대들의 마음은 그의 마음에 계속 귀 기울이도록 하십시오. 말이 없어도 우정 안에서는 모든 생각과 모든 욕망, 모든 기대를 기쁜 마음으로 품고 나누는 것입니다.” 지브란은 일에 대해 무엇이라고 답했을까. 학생들에게 일은 곧 공부일 터.

“그대들은 일함으로써 이 땅의 머나먼 꿈의 한 조각을 이룰 것입니다. 그 꿈은 태초에 태어날 때부터 그대들에게 주어진 몫이었으니 그대들이 쉬지 않고 일할 때 진정 삶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언자》는 100쪽 남짓한 얇은 책이다. 스무 살에 가족을 잃은 지브란이 슬픔 가운데 깨달은 진리가 책 갈피마다 숨어 있다. 옆에 두고 수시로 읽으면 예언자처럼, 구도자처럼 깊은 생각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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