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산업 육성 나선 중국…LG화학·삼성SDI에 또 '규제 장벽'

입력 2016-05-17 17:52  

외국 차배터리 차별하는 중국
외국기업 손발 묶어놓고 자국업체 육성

전기버스용 배터리에 보조금 안준데 이어
'규범조건' 인증 내세워 추가 규제할 태세
중국에 공장 없는 SK는 신청 자격도 안줘



[ 김현석 기자 ]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시장이다. 대기오염 해결책으로 전기차 보급에 나서 지난해 세계 판매량의 40%에 가까운 38만대가 팔렸다. 차 값의 절반 가까이를 정부가 보조금으로 줘서다.

LG화학 삼성SDI 등은 ‘엘도라도’를 찾겠다며 지난해 중국에 공장을 지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지난 1월 이들이 만드는 삼원계 배터리를 전기버스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했다. 안전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번엔 ‘규범조건’이란 규제를 들고 나왔다. 자의적으로 정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보조금을 주지 않겠다는 정책이다. 지난해 ‘중국제조 2025’ 계획을 통해 배터리산업을 키우겠다고 선언한 중국 정부가 한국 업체의 손발을 묶어놓고 자국 업체가 성장할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삼원계 규제 이어 규범조건까지

올 4월 중국 신문에 ‘공업정보화부가 규범조건과 보조금을 연계하는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는 기사가 실리자 한국 배터리업계엔 비상이 걸렸다. 작년 3월 발표한 규범조건은 난립한 중국 업체를 솎아내겠다는 정책으로 보였다. 하지만 보조금과 연계하면 해외 업체를 상대로 한 비관세장벽으로 쓰일 수 있다. 생산능력 품질 연구개발 등 여섯 가지 기준이 자의적으로 적용될 수 있어서다.

우려는 강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세 차례 발표를 통해 등록된 회사는 모두 중국 업체다. BYD CATL 등 중국 배터리업계 1~6위가 모두 포함됐다. 중국 시장을 공략해온 SK이노베이션은 규범조건 등록을 아예 신청할 수 없다. 중국 내 일정 규모의 생산시설이 없어서다.

이 회사는 지난달 중국 공장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파나소닉도 같은 이유로 신청이 불가능하다. 2월과 4월 등록을 신청한 LG화학과 삼성SDI는 서류 미비로 한 차례 반려돼 재심을 받고 있다.

공업정보화부는 또 지난 두 달간 전기버스에 들어가는 삼원계 배터리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실시한 결과, ‘안전성에 문제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1월 삼원계 배터리를 장착한 버스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결정을 내린 이후 한국 정부가 항의했지만 기존 입장을 그대로 유지한 셈이다.

○‘배터리 굴기’에 어려워진 한국

배터리는 자동차와 정보기술(IT) 산업을 이끌 핵심 부품이다.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만 해도 지난해 6조4000억원(일본 시장조사업체 B3) 규모에 달했다. 2020년 18조8000억원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산업을 한국과 일본이 장악하고 있다. 일?AESC가 점유율 23.5%로 1위고 2위가 LG화학(16.6%)이다. 4위는 일본 파나소닉(13.7%), 5위는 삼성SDI(12.5%)다. 1~10위 중 3위 BYD(15.1%)를 빼면 모두가 한·일 업체다.

BYD는 니켈 망간 카드뮴으로 양극재를 만들어 기술적으로 앞선 삼원계가 아니라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생산한다. 중국 업체 대부분이 그렇다.

LFP 배터리는 제조는 쉽지만 에너지밀도가 낮다. 이 때문에 중국 내부에선 제대로 경쟁이 붙으면 한·일 업체를 당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감돈다. 중국 연구기관인 CGII에 따르면 중국 업체의 배터리 생산원가는 Wh당 2위안이지만, 한국 일본은 1.8위안이다.

중국은 지난해 3월 ‘중국제조2025’라는 제조업 혁신 계획을 내놓았다. 여기서 반도체 로봇 등과 함께 배터리를 키우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기술과 원가 경쟁력이 뒤진 중국 업체가 선진 업체를 따라잡으려면 정부 지원과 규제가 필요하다. 삼원계 규제에 이어 규범조건을 내놓은 이유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를 도입해 자국 업체가 성장할 시간을 벌어주는 건 중국이 쓰는 단골 수법”이라고 말했다. 검색엔진이 대표적이다. 2009년 중국 검색시장에서 점유율 33.2%를 차지한 구글은 2010년 ‘인터넷 검열 규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출됐다. 그사이 바이두, 유쿠 등 중국 업체는 급성장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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