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사소한 걱정이 누군가에겐 '악몽 같은 일상'

입력 2016-05-19 18:45  

'집에 불나면 어쩌지' '에이즈에 걸리진 않을까'

멈출 수 없는 사람들
데이비드 애덤 지음 / 홍경탁 옮김 / 반니 / 344쪽 / 1만6000원



[ 고재연 기자 ]
덴마크의 아동문학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집에 불이 날까 두려워 여행용 가방에 늘 밧줄을 넣어뒀다. 불이 났을 때 밧줄을 타고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산 채로 매장될 것이라는 공포심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잠들기 전 늘 자신의 머리맡에 ‘겉보기에만 죽은 것임’이라고 쓴 쪽지를 놓아뒀다. 강박장애였다. 이런 강박관념은 그의 동화를 음울하고 어둡게 만들었다.

안데르센만이 아니다. 우리는 가끔 충동적인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아들이 혼자 길을 걷다가 자동차 사고가 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부터 ‘달리는 버스 앞으로 뛰어들면 어떻게 될까’ 등 극단적인 생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은 그대로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강박장애에 시달리는 이들은 몇날 며칠, 아니 몇 년씩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한다.

과학 전문지 네이처의 필자 겸 편집자인 데이비드 애덤 역시 ‘내가 에이즈(AIDS)에 걸리지 않을까’라는 강박관념에 20년간 시달렸다. 그가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을 통해 강박장애의 다양한 사례와 종류, 치료법을 소개하게 된 이유다.

강박을 일으키는 생각은 대부분 금기시되거나 난처한 주제다. 많은 사람이 그래서 강박장애를 감춘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2~3%가 강박장애를 겪고 있다. 3대 정신질환인 우울증, 약물남용, 불안장애에 이어 네 번째로 흔한 정신장애다. 종류도 다양하다. 가장 흔한 것이 더러운 것이나 병에 오염되는 것에 대한 강박이다. 뒷문을 잠갔는지, 가스레인지는 껐는지 등 피해에 대한 비합리적 강박이 그 뒤를 잇는다. 세 번째는 완벽주의로 인한 패턴과 대칭 강박이다. 종교적이며 불경스러운 생각, 원치 않는 성적인 생각, 폭력을 행사하는 생각도 강박장애의 한 종류다.

문제는 강박적 사고를 억누르려 할 때 비롯된다.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할수록 흡연에 대한 갈망이 증폭되듯, 강박적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할수록 그 생각은 더욱 강하게 돌아온다. 북극곰을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북극곰이 더 강하게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반복적으로 손을 씻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은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떠오른 생각이 현실에서 일어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강박장애는 치료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아직 완전한 치료법은 없다. 대신 저자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노출 및 반응 예방의 과정을 제시한다. 강박을 일으키는 대상에 환자가 노출되도록 하고, 거기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상황이 실제로 나타나지 않으며,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이다.

자신이 동성애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중년 남성은 단계적인 치료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매력적인 남성과 붙어 있도록 했고, 이후 동성애자가 보는 잡지와 포르노를 보도록 했다. 마지막 단계에선 치료사와 함께 게이바에 갔다. 12주가 지난 뒤 그의 강박장애 정도는 24점에서 3점으로 떨어졌다. 강박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승화시킨 경우도 있다. 안데르센은 강박관념이 자신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준 창조적 상상력의 이면이라고 생각했다.

“강박장애는 스스로 없어지지 않는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혼자 끙끙 앓을수록 강박적인 생각은 더욱 집요하게 자신의 뇌를 괴롭힐 뿐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가족과 친구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저자는 말한다. “그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의 생각 공장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뿐이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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