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계 전문가들 전망 들어보니…시장 예측 엇갈려
[ 김정훈/안혜원 기자 ] #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이모 씨(39)는 올 가을에 9년간 몰았던 차를 바꿀려고 생각 중이다. 가솔린 차를 타던 그는 주변에서 디젤 승용차를 많이 타는 모습에 디젤차 구매를 고려했으나 방향을 바꿨다. 최근 불거진 디젤 파문이 부정적 인식을 줬기 때문이다. 그는 "탄소 배출이 적어서 디젤 승용차는 친환경차로 생각해왔는데 디젤차의 오염물질이 많다는 뉴스를 접하고 가솔린 승용차로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연비가 좋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가솔린 차보다 적어 디젤 승용차를 친환경차로 인식하던 소비자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연이어 터진 디젤 게이트로 '디젤=친환경' 공식이 허구로 드러나자 그동안 한국 시장에 자리잡았던 클린 디젤이란 말을 비웃는 듯 '더티 디젤'이란 단어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 디젤 차종을 주력으로 꾸린 일부 업체들은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40대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수입차 업계에 종사해 오면서 지금이 가장 악재가 많이 몰려있는 시기"라고 우려했다.
22일 한경닷컴이 알아 본 산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디젤 사태에 따른 소비자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거나 또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수 있다는 다양한 시각이 공존했다.
주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는 기업이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할 경우 소비자들이 기업의 상품에 대해 신뢰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소비자들이 폭스바겐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됐지만 비슷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이제는 디젤차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추론을 하게 됐다"면서 "연이은 두 번의 사건으로 디젤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일반화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국민들의 여론이 높아질수록 디젤차에 대한 정책 당국의 규제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자동차 브랜드가 가지는 사회적 이미지에 주목해 소비자 구매에 변화가 올 것으로 예측했다.
정 교수는 "브랜드 시대에 접어들고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시대에 소비자는 다양한 자신의 소셜 밸류를 자동차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디젤차가 대기오염의 주범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얻게 된다면 아무리 좋은 차라 하더라도 구매율은 하락할 수 밖에 없다"며 "소비자들이 사회적인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디젤 사태에 따른 판매 부진이 길어지지 않고, 정부의 규제 여부에 따라 변화가 생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장현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디젤 판매가 10% 가량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디젤차 판매율이 하락할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소비자들은 환경에 대해 관심이 없고 당장 내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것과 관련되지 않은 일에 소비 패턴을 변화하지 않는다"며 "그렇다고 디젤 차량을 대체할 만한 선택지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이브리드차는 비싸고 수리도 쉽지 않다"면서 "소비자들이 기술적 신뢰도가 낮은 데다 비싼 가격 탓에 경제적으로 접근하기에도 심리적 저항감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가솔린 차로 가기에도 제약이 많다. 현재 국내 자동차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SUV는 디젤 모델이 대다수"라며 "당장 닛산 캐시카이를 사려고 했던 고객도 가솔린 세단보다는 다른 디젤 SUV를 구매하는 방안을 선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재용 이화여대 교수(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장)는 정부의 규제가 없으면 지금과 같은 디젤 승용차의 인기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신차 인증 이전 단계부터 대기오염물질 배출 검사를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규제해 제조사들도 환경 기준을 엄격히 맞추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신차 출고시 4년 뒤에 받는 첫 정기검사에서 질소산화물, 초미세먼지 등의 검사는 빠져 있는데 검사 항목을 추가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체들은 이번 디젤 사태가 빠르게 디젤차 시장 위축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 ?있다. 최근 레저 열풍과 함께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판매량이 늘고 있으며 대체로 디젤 차량이 주도하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디젤 이슈만 놓고 볼 게 아니라 유가 움직임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가솔린차 선호도는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훈/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lenn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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