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가 뭐길래] 모호한 화법 즐기는 대선 주자들

입력 2016-05-23 16:35   수정 2016-05-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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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식의 정치가 뭐길래]

모호한 화법 즐기는 대선 주자들

대선 출마 의지 밝히면서도 출마 여부엔 어정쩡

“권력을 잡고 무엇을 할지에 대한 비전 없다”비판 제기



여야 대선 주자들의 최근 움직임이 분주하다. 내년 대선 관련 발언들과 행보들이 부쩍 늘어났다.

25일 예정된 반기문 UN사무총장의 방한이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법이 모호하다. 내년 대선 출마가 기정사실화 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를 예외로 하고,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여야 잠룡 가운데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딱 부러지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대선에 뜻이 있다고 밝히면서도 출마 여부에 대해 알듯 모를듯한 대답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반 총장은 지금까지 여러차례 대선에 나가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때마다 특유의 모호한 화법을 동원해 피해나갔다. 그는 지난 18일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 만찬에서 한국 특파원들을 만나 ‘내년에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기여할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에 유엔 사무총장직을 충실히 수행하게 해 달라면서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아직 7개월 남아 있다”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면 고맙겠다”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유엔 사무총揚막關?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 총장이 단 한번도 명시적으로 대선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반 총장의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 총장이 대선 출마에 관해 딱 부러지게 얘기하지 않는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12월 그만두는 UN사무총장직을 수행하는 도중에 출마를 언급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총장직을 수행하는데 국제적으로 여러 뒷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차기 유엔 사무총장 하마평 기사를 내면서 반 총장에 대해 “역대 최악”이라는 혹평을 했다.

또 유동적인 한국 정치 상황을 지켜 보면서 출마 여부를 밝혀도 늦지 않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충청 출신 3선 의원은 “새누리당 발 정계 개편 시나리오들이 나오면서 반 총장의 선택지도 불투명해졌다”며 “대권 판도가 좀 더 가닥이 잡힌 뒤 판단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최근 “대통령을 한번 해보는게 꿈”이라면서도 “그런데 지금은 도지사로서 충실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해야 하겠다. 존재감이 드러나도록 하겠다”고 대선에 대한 의욕을 나타냈지만 딱부러지게 출마하겠다, 말겠다라는 말은 삼가하고 있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고문은 “새 그릇을 만들기 위한 정치권의 각성이 필요하고,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을 담아낼 새 판이 짜여져야 한다”면서도 자신의 정치권 복귀와 대선 출마에 대해선 여전이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난 20일 “시대의 요구가 있을 때 준비가 안 된 건 군대조직으로 치면 장수의 문제이고, 부름에 응답하지 못하는 건 가장 큰 죄”라고 말했다. 이어 “제게 많은 기대를 거시는 분들에게 저는 아직 불펜투수 정도 될 것이라고 말씀드렸고 지금도 여전히 그 상태”라며 “열심히 몸을 만들고, 연습하고, 몸을 푸는 단계”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 “제가 계속 응원을 해야 할지 아니면 슛을 하기 위해 뛰어야 하는지는 그때 가봐야 한다”고 말해 대선 출마 결정은 뒤로 미뤘다.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답하는 것은 현직 단체장의 경우,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땐 현직 임기가 아직 2년이 남았는데 이를 소홀히 하고 대선에만 눈독을 들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발전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줬더니 대선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삼는다는 눈총을 받을 수 있다.

또 반 총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치권 상황이 유동적이어서 아직 구체적으로 대선 플랜을 밝힐 단계는 아니라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는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그렇다고 대선에서 완전히 발을 빼게 되면 대선 주자로서 존재감을 잃어 버릴 수 있어서 한발은 대선에, 한발은 현직에 몸을 담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선에 대한 의지를 밝히면서도 비전을 보이지 않는데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정치가 권력을 잡는 것만 생각하지 권력을 잡고 무얼 할지가 불분명하다. 권력을 잡고 국가를 어떻게 끌고 갈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둘지 얘기해야 하는데 여야 공히 오로지 굅탓【?이기고 지고, 다음 대통령을 내고 못내고 얘기로만 흘러간다”고 비판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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