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국민연금 반대로 딜라이브(옛 씨앤앰) 선제적 구조조정 ‘올스톱’

입력 2016-05-23 17:42   수정 2016-05-23 18:09

대주단 27일까지 채무 재조정안 동의 안하면 인수금융 부도 처리
국민연금 투자관리위, 투자금 회수 극대화 보다 감사 면피 우선
국민연금 투자한 MBK의 김병주 실패 인정 안하는 ‘괘씸죄’도



이 기사는 05월23일(16:1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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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3위 케이블TV업체 딜라이브(옛 씨앤앰)의 선제적 구조조정이 국민연금공단 등 일부 연기금들의 반대로 ‘무산 위기’에 처했다. 투자 부실 책임을 면피하는 데 급급한 국민연금의 복지부동이 국내 기업들의 선제적인 구조조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딜라이브 대주단 주간사인 신한은행은 지난 20일 21개 대주단을 상대로 전체 회의를 소집 “오는 27일까지 대주단이 2조2000억원 규모 딜라이브 인수금융 채무 재조정안에 대한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인수 금융에 대한 부도 및 담보권(질권) 행사 등을 위한 후속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 반대로 구조조정 올스톱
채무 재조정 안건은 21개 대주단 전원이 동의해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KDB생명보험, 부산은행 등 4곳 정도가 채무 재조정 안건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딜라이브는 지난달 29일부터 인수금융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못해 연체하고 있는 상황이다.

채무 재조정은 총 2조2000억원의 인수금융 중 8800억원을 상환전환우선주(RCPS)와 같은 우선주로 전환하고 나머지 대출은 금리를 인하한 후 만기를 3년간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채권단들은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딜라이브가 앞으로 SK텔레콤과 같은 대형 통신사와 경쟁하기 위해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워크아웃 또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전 대주단 자율의사로 출자전환과 같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신한은행은 채무재조정이 무산되면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금융회사를 제외하고 주주 협의회를 구성해 회사 경영 및 매각 작업을 추진하겠다는 ‘플랜B’(비상 대책)를 제안했다. 이 경우 연간 2000억원 이상의 상각적 영업이익(EBITDA)를 내고 있는 딜라이브의 인수금융이 부도를 내는 상황이 발생한다. 시중은행의 경우 대출금의 최소 50% 이상을 충당금으로 쌓아야 하는 ‘극약처방’인 셈이다.

오는 7월 인수금융 만기에 앞서 원활하게 처리될 것으로 예상됐던 채무재조정이 ‘난기류’에 휩싸인 것은 국민연금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4월 29일, 5월13일 두 차례에 걸쳐 내부 투자관리위원회를 열어 채무재조정안을 논의했지만 안건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국민연금 상황을 지켜보던 새마을금고, KDB생명보험, 부산은행 등 3개 금융회사도 관망세로 둘아섰다. 국민연금의 딜라이브 인수금융은 3600억원으로 전체의 16% 수준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이전 채무 재조정은 국민연금의 첫 사례로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향후 안건 동의 여부 및 일정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닫고 있다.

대주단은 “국민연금이 대안도 없이 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방해하고 있다”며 격앙된 분위기다. 대주단은 특히 국민연금이 올해 초부터 신한은행을 중심으로 4개월여간 진행해 온 채무 재조정 논의에 참여하고서도 내부 회의에서 안건이 부결된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실무진의 의견이 내부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되지 않아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민연금을 신뢰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후관리위, 자금 회수보다 면피 급급
안건이 부결된 이유는 사후관리위원회에 참석하는 외부의 전문 위원이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서울 유명 사립대 출신의 이 교수는 회의에서 “기업 부실을 초래한 대주주들의 고통 분담이 불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사후관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민연금 리스크관리센터장 등도 보수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국민연금은 MBK파트너스,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펀드(MKOF),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대주주 지분 전액 감자 등과 같은 주주의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MBK에 대해서는 창업주인 김병주 회장이 투자 실패를 초래한 책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사후 관리를 직접 총괄하지 않는 점 등에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국민연금은 MBK의 주요 펀드 투자자(LP)이자 MBK가 홈플러스 등 국내 대기업들을 인수할 때 대규모 인수금융을 제공했었다.

하지만 대주단은 국민연금 주장대로 추진할 경우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부의 대주주 변경 승인에만 3~6개월가량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하반기로 예정된 방송 사업권 재승인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항변했다. 딜라이브는 전체 17개 방송 사권권 중 15개가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1월까지 집중돼 있다. 케이블TV의 경우 방송 사업권이 기업 가치의 핵심이다.

대주단은 출자 전환을 하게 되면 대주단의 형식적 지분율이 19.9%에 그치지만 매각 등 주요 안건을 처리할 경우 우선주가 보통주로 지분율이 97%까지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MBK, 맥쿼리, 미래에셋 등 기존 대주주들은 총 9000억원의 딜라이브 투자금을 사실상 전액 손실로 처리하는 등의 손실을 분담한다는 설명이다.

딜라이브의 한 관계자는 “채무 재조정 지연으로 지난 4월 사명 변경 등을 통해 제 2의 도약을 이루려 했던 시도가 물거품이 되고 있다”며 “경쟁사들이 언론의 인수금융 부도 위기 보도를 교묘히 악용해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민연금 안팎의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부실 자산을 처리할 목적으로 2013년 만든 ‘투자관리위원회’가 향후 기업들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가로 막는 구조적인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자 실패 사안이 발생하면 매각 대금을 극대화하는 경제적 방안보다 투자 실패에 대한 국민연금 책임을 면피하려는 관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실제 국민연금 내부【??선제적 구조조정 대신 워크아웃 또는 법정관리를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온다. 기업 가치가 급락하겠지만 향후 감사원, 국회 등에서 문제될 소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연금은 홈플러스, 한온시스템, ING생명 등 PEF들이 인수하는 국내 대기업 M&A에 최대 수천억원 규모로 인수금융 또는 메자닌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국내 PEF업계에 매년 1조원 안팎의 자금을 위탁하는 국내 최대 LP다.

대주단의 한 관계자는 “500조원을 굴린다는 국민연금의 투자 사후 관리 및 리스크 관리 능력이 국내 대형 시중은행에도 한참 못미치고 있다”며 “앞으로 국내 기업들의 선제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커다란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이라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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