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훈 기자 ]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아슬아슬하게 처리되고 있다. 뒤탈을 우려한 정치권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은 노사 합의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기획재정부는 23일 노사 합의 없이도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기재부 뜻대로 노사 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 거쳐 성과연봉제 도입을 발표하는 공공기관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노사 합의를 강조한 ‘여야 3당 정책위원회 의장-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회동’ 당일(지난 20일) 노조 동의 없이 이사회를 열어 도입안을 통과시켰다. 정부 압박에 성과연봉제를 일단 도입해 놓고 ‘노조가 소송을 걸어 법원에서 패소하면 기존 호봉급제로 회귀한다’는 내용의 이면계약까지 맺은 기관도 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닦달을 하니 사측도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사회 의결을 강행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4대 구조개혁 중 하나인 공공부문에서 ‘보여주기식’ 성과를 내기 위해 ‘공기업은 6월 말까지, 준정부기관은 12월 뺑沮?rsquo;라는 데드라인을 정하자 주먹구구식 일처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성과연봉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부의 강압에 못 이겨 절차를 생략한 채 도입하면 더 큰 부작용이 있을 것이란 우려가 많다.
법조계 관계자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 지금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 직원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기 때문에 노조나 직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노조가 소송을 걸면 패소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사측이 ‘줄패소’하면 성과연봉제 도입의 정당성이 희석돼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이 무산될 수도 있다.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이에 대한 책임을 질 최고경영자(CEO)는 자리를 떠난 뒤일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공공기관 CEO 임기는 1~2년밖에 안 남았다. “노조 동의가 없어도 문제될 게 없다”고 말한 장관과 공무원들 역시 내후년이면 정권이 바뀌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태훈 경제부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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