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윤성민 IT과학부장
[ 박근태 기자 ]
격변하는 ‘기술 전쟁’ 속에서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지난 50년간 추진해온 과학기술 전략과 풍토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선진국 베끼기에 급급한 방식으로는 추격자 신세를 영원히 면치 못할 것이란 위기감에서다. 한국경제신문은 국내 기초과학의 위기와 해법을 진단하기 위해 2001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팀 헌트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명예연구위원(73)과 국내 최고 권위 과학자들의 연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IBS) 단장을 맡고 있는 염한웅 포스텍 교수(50),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47)를 초청해 지난 20일 서울대 엔지니어하우스에서 좌담회를 열었다. 사회는 윤성민 IT과학부장이 맡았다.
▷사회=한국의 기초과학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나.
▷팀 헌트 명예연구위원=한국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똑똑하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것 같다. 지난해 이맘때 서울대를 방문했을 때 느꼈지만 한국의 기초과학계 분위기는 경직돼 있다. 대학에서 물리학자는 이 정도 필요하고 생물학자는 이 정도 필요하다는 식의 생각은 20~30년 전 방식이다.
▷염한웅 교수=과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고, 이 호기심이 지식을 생산한다. 새로운 지식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팔 수 있는 상품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한국은 자체적인 기술혁신보다는 복제품을 빨리 만들어 내는 데 익숙한 사회·경제 구조였다. 거대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패스트 카피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탈바꿈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새 산업을 육성하고 혁신을 가능케 하는 토대가 바로 기초과학이다.
▷사회=한국 과학계의 체질 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염 교수=한국의 주요 대학은 테뉴어(tenure·정년보장) 교수가 되더라도 논문 수를 여전히 센다. 도쿄대에선 종신 교수로 임용되려면 자신이 발견한 것에 대해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 한국의 2개 주요 대학에 재직하는 동안 내게 무엇을 발견했는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과학 논문에 실린 ‘발견’보다는 논문이 어느 저널에 실렸느냐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중요한 건 과학자가 갖고 있는 ‘질문’이다. 과학계는 성과를 평가할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피어리뷰(peer review·동료 간 평가) 제도를 확립해야 한 ?
▷김빛내리 교수=근본적 문제는 과학자들 사이에 믿음이 없다는 점이다. 피어리뷰는 서로를 평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연구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인데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회=박근혜 대통령이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공무원들에게 연구자들에게 간섭하지 말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이는데.
▷헌트 연구위원=정부와 관료가 엉뚱한 결정을 하는 일을 자주 봤다. 한 예로 어느 연구소가 더 나은 현미경을 개발해야 한다면서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은 일이 있다. 그런데 진짜 새로운 혁신적인 현미경을 그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발명했다. 똑똑한 사람들(과학자)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답이다.
▷염 교수=한번은 정부 회의에서 정부가 유망한 분야를 찾아 아이디어를 낸다면 지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빅데이터로 조사했다며 두 달 만에 가져온 연구 아이템이 그래핀(육각형 탄소 덩어리 구조의 신소재)이었다. 그래핀에 대한 연구는 이미 지난 10년 동안 진행된 것이다. 새로운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자금이 이렇게 쓰이고 있다.
▷김 교수=과거 데이터를 가지고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빅데이터가 된 내용은 이미 나온 얘기들이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을 때는 과학자들도 무엇을 찾을지 모르는데 정부가 어떻게 알겠나. 과학자는 예측 못하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과학자 외에 다른 누군가가 어떤 연구를 할지 결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만큼은 보텀업(bottom-up·연구자 자율형) 방식으로 지원돼야 한다.
▷사회=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면 기초과학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뀔 것 같다.
▷헌트 연구위원=노벨상은 보통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던 것을 해내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뭔가 불가능한 것을 한다고 하면 절대로 돈을 주지 않는다. 내가 학부생이었을 때만 해도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들 말했다. 쿼크 입자 모델을 개발한 공로로 199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제롬 프리드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역시 처음에는 양성자 안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이처럼 과학자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블루 스카이’ 연구가 세상을 바꿨다. 젊은 과학자들이 실수하게 내버려 둬야 한다. 과학은 실수의 연속이다.
▷김 교수=정말 제안서가 없는 연구를 하고 싶다. 특히 젊은 연구자들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연구 환경은 경직돼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아이디어를 실현할 기회를 살려 줘야 한다.
▷염 교수=우리나라에서도 과학자들이 미친 것처럼 보이는 일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제도와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정부는 최고의 과학자를 선별해서 그들에게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면 된다. 과학은 그들이 하는 것이다.
정리=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50% 이상 상승할 新유망주 + 급등주 비밀패턴 공개 /3일 무료체험/ 지금 확인
매일 200여건 씩 업데이트!! 국내 증권사의 리서치 보고서 총집합! 기업분석,산업분석,시장분석리포트 한 번에!!
한경스타워즈 실전투자대회를 통해서 다양한 투자의견과 투자종목에 대한 컨설팅도 받으세요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