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잭슨과 김종인 대표, 그리고 감춰진 진심

입력 2016-05-26 14:16  



(증권부 장규호 기자) 동영상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의 대표 미드(미국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13년 미국서 처음 방영된 정치스릴러물이지만 올초 한국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를 통해 전파를 타면서다.

상상을 초월하는 권모술수와 극적인 반전 등 이 드라마에 빠지게 하는 요소는 한둘이 아니다. 갈등의 중심이 되는 정부 정책과 미국 고유의 국회 운영방식 등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 하지만 역시 미드이다 보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장면이 간간이 나온다.

‘시즌2’에서 주인공이자 미국 부통령인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 粉)가 백악관 집무실로 인디언부족 지도자들을 초청하는 부분이 그런 경우다. 야당인 공화당에 정치자금을 대는 인디언계 카지노 업자를 궁지로 몰기 위해 미팅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부통령이 이들을 맞이하다가 갑자기 화들짝 놀란다. 벽에 걸린 한 초상화 때문이다. 부통령은 이 초상화를 얼른 집어 내려놓는다. 그것도 뒤집어서.

초상화의 주인공이 누구였기에 그랬을까. 드라마에선 따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미국 시청자들은 바로 알아볼 만한 인물이었기 때문. 바로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이? 미국 역사를 모르는 외국인들로선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을 부분이다.

잭슨은 백인들에겐 미국 영토를 확대하는 역사 속의 ‘전쟁 영웅’이지만 인디언들에겐 ‘인디언 학살의 주범’으로 낙인찍혀 있다. 인디언들은 지금도 잭슨 대통령에게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런 잭슨의 초상화를 미리 ‘조치’하지 못한 걸 발견하고는 부통령이 놀라며 미안해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손님’들이 돌아간 뒤 부통령은 초상화를 다시 집어 든다. 묻어 있던 먼지를 ‘후~’ 불어내고는 다정한 표정으로 한번 바라본 뒤, 반듯하게 제자리에 다시 건다.

픽션이긴 하지만 언더우드 부통령은 민주당원이다. 잭슨 대통령도 마찬가지. 두 사람의 출신지는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로 같다. 부통령은 사우스캐롤라이나 하원의원 출신이기도 하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군인의 길을 걸으려 했던 그에게 잭슨은 평소 존경하는 인물이었을 게다. 그런 언더우드가 잭슨 초상화를 특별한 마음으로 대했을 거란 추측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인디언 지도자들 앞에선 초상화를 뒤집긴 했지만 말이다.

이 앤드루 잭슨이 지난 달 일제히 외신을 탔다. 미국 오바마 정부가 달러화 도안 인물을 바꾸기로 했다는 뉴스에서다.

오바마 정부는 새로운 지폐 도안 인물로 마틴 루터 킹 목사 등 흑인인권, 여성참정 운동가 9명을 선정했다. 눈에 띄는 점은 킹 목사 등 8명은 지폐 뒷면에 들어가는 반면, 해리엇 터브먼이라는 흑인 여성운동가는 20달러의 앞면을 장식한다는 사실.

신용카드 사용이 한국만큼 편리하지 않은 미국에서 20달러는 미국인들 지갑속에 가장 많이 들어있는 돈이다. 그 20달러 지폐에 새겨져 있는 인물이 바로 앤드루 잭슨이다. 그런 그의 얼굴이 흑인 여성운동가로 바뀐다는 얘기다. 재밌는 점은 따라붙는 부연설명이다. 잭슨의 얼굴이 20달러 지폐 뒷면으로 자리를 옮겨 백악관 도안과 함께 실린다는 뉴스였다.

오바마 정부는 집권 마지막 해를 맞아 민주당의 진보적인 정치철학과 역사인식을 지폐 인물 교체를 통해 대외적으로 드러내고 싶었을 게다. 잭슨과 터브먼의 교체가 그것을 상징한다. 하지만 앤드루 잭슨을 완전히 지폐에서 퇴장시키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오바마 정부 인사들도 드라마의 언더우드 부통령처럼 마음속으로는 잭슨 대통령을 존경하고 흠모하고 있지 않았을까.

미드와 현실 미국 정치가 오버랩 되는 순간, 한국 정치권 뉴스가 눈에 확 들어왔다. 제1당으로 부상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최근 행보에 관한 뉴스다.

김 대표는 지난 달 20일 당 비대위 회의에서 “한국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검토해 현 구조로 가기 어렵다면 본질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기업 구조조정’이란 단어 자체를 금기시 했던 기존 야당의 모습에서 진일보한 듯 했다. 구조조정에 앞서 대규모 실업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사회안전망 구축이 전제돼야 한다고는 했지만 개선된 인식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야당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위기에 처한 한국 기업 구조조정에 큰 도움이 될 텐데, 혹시 구두선에 그치지 않을까. 언더우드 부통령과 오바마 정부처럼 김 대표 마음속에도 감춰진 진심이 따로 있지 않을까.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하지만 지난 23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한 김 대표의 발언은 ‘감춰진 진심’이 있을 거란 생각에 심증을 굳혀줬다. 그는 “우리나라 대형 국영 기업체나 대우조선해양처럼 1만 명이상 고용하는 업체는 근로자들이 경영감시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종국에 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주인 없는 회사로, 노사가 자기 잇속만 차리는 데 한 몸같이 움직이다 수십조 원의 회사 여유자금을 거덜 내고 만 대우조선을 찾아서 과연 할 소리인지. 총선 직후 구조조정을 돕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야당 대표가 한 달 뒤에는 경영진에 모든 책임이 있으니 앞으로는 근로자가 경영을 감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국 하고 싶었던 얘기는 예전 야당과 바뀐 게 없는데 수권 정당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잠시 아닌 척 했던 건 아닐까. 김종인 대표의 최근 행보에서 언더우드 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그리고 앤드루 잭슨이 다시금 떠오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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