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 끝까지 '졸속'…안경·렌즈 해외직구 반값인데 법으로 금지

입력 2016-05-26 18:04   수정 2016-05-29 17:08

19대 국회 마지막 날 졸속 입법
네티즌 "소비자가 봉이냐"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어렵게" 1주일 만에…여당 '거꾸로 입법' 나서
'묻지마 살인' 여론 끓자 부랴부랴 관련법 개정 논의
국회법 개정안에는 국회의원 민원 창구로 권익위 활용하는 내용도



[ 임현우 / 이지현 / 이수빈 기자 ] 여권이 정신질환자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 절차를 까다롭게 한 정신보건법 개정안을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지 불과 1주일 만에 정반대 내용의 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정신질환자의 인권 보호 등을 이유로 강제 입원을 어렵게 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가 최근 서울 강남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자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자 법을 거꾸로 바꾸려는 것이다.

같은 날 국회를 통과한 의료기사법 개정안은 안경과 콘택트렌즈의 해외 직접구매를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으로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9일 임기가 끝나는 19대 국회가 마지막까지 엉터리 법안을 졸속으로 처리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26일 국회에서 여성안전대책 간蒔만?열어 정신질환자에 대한 행정입원명령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행정입원은 의사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정신질환자에 대해 경찰이 지방자치단체에 입원을 요청하는 제도다. 입원을 요청할 수 있을 뿐 강제성은 없던 것을 법적으로 보완해 실효성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침은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정신보건법 개정안 내용과 배치된다. 정신보건법 개정안은 정신질환자가 본인이나 타인을 해칠 위험이 있을 때만 강제 입원이 가능하도록 엄격하게 규정했다. 법 적용 대상인 정신질환자 범위도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제한했다.

법안이 통과되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성명을 내고 “정신질환자의 입원 절차가 강화돼 입원이나 약물치료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 강남역 주변 살인사건에서 보듯 정신질환자에 대한 예방·관리의 중요성이 커졌음에도 이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됐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통과된 의료기사법 개정안은 안경과 콘택트렌즈의 해외 직구(직접 구매)를 원천 봉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 상품의 구매·배송 대행을 금지하고 위반 시 3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리는 내용이다.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 등 10명이 지난해 5월 제출한 개정안에 포함된 것으로, 다른 의원들이 낸 4건의 같은 법 개정안에 슬그머니 통합돼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대한안경사협회 등 관련 단체가 법 개정을 요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도 도수가 들어간 안경과 렌즈는 ‘의료기기’로 분류돼 인터넷 판매가 금지돼 있었는데, 미국 일본 홍콩 등 해외 인터넷 쇼핑몰에서 안경과 렌즈를 구입하는 소비자가 늘자 안경사협회 등이 이를 금지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안경사협회는 법안 통과 직후 “안경·콘택트렌즈 해외 직구 금지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는 내용의 공지문을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국민 보건을 위해 안경과 렌즈의 인터넷 판매 및 해외 직구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김영필 안경사협회 회장은 “안경과 콘택트렌즈는 일반 공산품이 아닌 의료기기이기 때문에 검증된 유통 경로를 통해 판매해야 한다”며 “해외 직구하면 안전한 사용 방법 등을 안내받을 수 없어 눈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 이익을 위해 소비자 편의를 뒷전으로 미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외국보다 두 배 이상 비싸게 파는 국내 안경 시장의 유통 구조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슈롬 소프렌 일일착용 렌즈’는 국내 안경점에서 90개들이 한 통이 10만8000원이지만 직구로는 30~40달러(3만5000~4만7000원)면 살 수 있다. ‘원데이 아큐브 모이스트’ 등도 직구 가격이 국내 정가보다 50%가량 싸다. 주문 후 3~4일 안에 배송해 주는 해외 쇼핑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네티즌들은 안경 직구를 막는 이 개정안을 스마트폰 구매 부담을 키운 ‘단통법’에 빗대 ‘안통법’이라 부르고 있다. 한 네티즌은 “도서정가제로 책값 할인을 막고, 화장품법으로 샘플 판매를 금지하고, 단통법으로 휴대폰값을 올리더니 이젠 렌즈까지 못 사게 한다”며 “다음 품목은 뭐냐”고 비판했다.

국회법 개정안 중 국회 상임위원회가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 조사를 요구하면 권익위가 3개월 안에 조사 및 처리 결과를 보고하도록 한 내용은 국회 권한을 지나치게 키운 ‘독소조항’으로 비판받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권익위를 지역 민원 처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다. 국회가 행정기관인 권익위의 개별 민원 조사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 논란도 제기된다.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가 행정부 업무에 지나치게 개입하도록 한 독소조항”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식품의 나트륨, 당류, 트랜스지방 등을 줄이기 위한 사업을 하고 ‘나트륨 등 줄이기 운동본부’를 설치하도록 한 식품위생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과잉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양 불균형으로 생기는 질병을 줄이자는 것이 법안 취지지만 정부가 국민 식생활 개선에 나서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나트륨 등 줄이기 운동본부에 매년 10억원 이상을 지원하도록 한 것도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현우/이지현/이수빈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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