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 선언은 안했지만
반기문·손학규·정의화, '모호한 화법'으로 군불때기
대선에 한 발 걸친 단체장들
남경필·원희룡·박원순·안희정, 현직 유지한 채 도전 채비
기존 잠룡들도 본격 행보…"뭘 할지 언급 없다" 비판도
[ 홍영식 선임 기자 ]
대선전이 조기 과열되는 양상이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군불을 지핀 데 이어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대선 출마를 시사하면서 대선전의 한복판에 섰다. 여권의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 야권의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 등도 가세하고 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의 행보도 빨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의 화법은 모호하다. 대선에 한 발 걸쳐 놓으면서도 출마하겠다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는 않는다. 나라를 어떻게 이끌고 가겠다는 구상도 없이 군불만 때고 있다.
반 총장은 2009년 10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들과의 만찬에서 “국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4월엔 “은퇴 후 ‘008 요원’으로 일하거나 아내와 근사한 식당에 가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가 지난 25일 “어떤 일을 할지 임기 종료 후 결심하겠다”며 “분열된 국민을 통합할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대선 출마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도되자 26일엔 “과잉 해석된 것 같다”고 한 발을 뺐다.
반 총장을 지지하는 새누리당 충청 출신 한 의원은 “정계 개편 시나리오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판도가 어느 정도 가닥 잡힌 뒤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7·30 경기 수원병 보궐선거에서 낙선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의 흙집에서 칩거해 온 손 전 고문은 지난 5·18 행사에 참석해 불쑥 정치권 새판 짜기에 앞장서겠다며 정계 복귀를 시사했다. 강진에 다시 내려간 그는 정계 복귀 시기와 대선 출마 여부 등에 대해 입을 닫았다. 남 지사는 “대통령을 한번 해보는 게 꿈”이라면서도 “지금은 도지사로서 충실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해야겠다”고 대선 출마를 시사하면서도 일단 본격적인 행보는 자제하는 분위기다. 안 지사는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다”면서도 출마 여부엔 명확한 답을 피했다.
이렇게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현직 단체장이 임기가 아직 2년 남은 상황에서 출마를 공식화하면 대선에만 눈독을 들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발전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줬더니 대선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삼는다는 눈총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발을 빼면 대선 주자로서 맛怜㉯?잃어버릴 수 있어 대선에 한 발 걸쳐놓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 의장이 국회의장직에 있으면서 싱크탱크 ‘새한국의 비전’을 출범시키고 대선 출마 뜻을 나타낸 것은 정당하지 못한 처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의장직을 대선으로 가는 발판으로 삼았다는 이유에서다.
대선 주자들이 대통령이 돼 무얼 하려는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비전 제시도 없이 군불 때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정치가 권력을 잡는 것만 생각하지, 권력을 잡고 무얼 할지는 불분명하다. 권력을 잡고 국가를 어떻게 끌고 갈지를 얘기해야 하는데, 여야 모두 다음 대통령을 내고 못 내고 얘기로만 흘러간다”고 지적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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