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운 구조조정, 기초체력 훼손은 안 돼

입력 2016-06-05 17:47  

"구조조정의 벼랑 끝에 몰린 해운
불황 이후 대비한 기초체력 다져
한국 경제 선도하는 역할 되찾길"

김인현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해법학회장 >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양대 국적 원양 정기선사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첫째, 두 원양 정기선사는 제3국 간 화물운송을 통해 연간 100억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2000년대 중반까지 해운산업은 자동차·조선·반도체산업과 함께 4대 외화가득 산업의 하나였다. 둘째, 항만 물류 등 해운과 연계된 산업을 통해 국부를 창출하는 기능도 매우 컸다. 부산항 등에서 처리되는 수출입용 화물은 항만부대사업을 일으키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들 정기선사는 세계 각국에 부두를 운영하며 수입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셋째, 이들 원양 정기선사는 한국의 상품 수출입 화주들에게도 유익하다. 국내 화주들이 원하는 날짜와 장소에 상품을 수출입하는 기능은 국적선사가 외국선사보다 더 확실하고 편리하게 제공한다. 정기선 운송계약은 ‘서비스계약’이라는 장기계약을 체결하는데, 대량 화물을 가진 우리 화주는 국적 원양 정기선사와 운임 조건 등에서 유리하게 계약을 체결해 왔다. 넷째, 이들은 운송계약 관련 분쟁에서 우리 화주에게 유리한 점을 제공한다. 원양 정기선사들은 세계 각국에 선박이 기항하므로 여기저기에서 소송을 제기당할 수 있다. 따라서 선사의 주된 사무소를 관할하는 법원에서만 소송을 제기하도록 약정하고 있다. 일본 선사인 NYK는 도쿄, 덴마크 선사인 머스크는 런던, 독일 선사인 하파그로이드는 함부르크의 지방법원에서만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우리 선사와 관련해서는 서울에서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다섯째, 이들은 한국의 해상법(海商法)이 존재하도록 도와준다. 용선 및 선박건조 계약과 관련한 분쟁은 거의 모두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고 런던의 해사중재원에서 다루도록 약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해운 관련 분쟁은 대부분 영국에서 처리돼 왔다. 다행히 국적 원양 정기선사의 분쟁 해결은 한국 준거법에 우리 법원을 관할법원으로 한 소송을 진행하도록 약정돼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해상법 관련 사건이 존재하도록 해 줬다.

이런 여러 긍정적인 기능을 하는 국내 양대 원양 정기선사가 지금 큰 위기를 맞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양대 원양 정기선사는 다양한 선종(船種) 운영으로 위험을 분산시키며 성공적으로 영업해 왔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부터 부채비율을 맞추기 위해 자동차운반선 등을 매각하고, 다시 매각한 선박을 높은 용선료를 내고 빌려와 운항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운영하던 부두도 매각했다. 그 결과 2010년대 전체 영업비 중에서 정기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잔뜩 높아졌다. 반면 이 기간 일본의 NYK는 정기선 영업 비중을 오히려 낮추고 자동차운반선 및 육상물류업 비중을 높였다. 그리고 해외에 부두를 운영하면서 수입도 올렸다. 지금도 NYK가 글로벌 불황국면을 안정적으로 이겨내고 있는 비결이다. 이런 형태로 일본의 3대 정기선사는 동일 해운동맹 안에서 안정적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다. NYK는 1998년 해운동맹이 폐지돼 정기선 운임이 자율화되자 극심한 경기변동을 견디기 어렵다고 보고 그 비중을 줄인 것이다.

이번 해운 구조조정은 NYK의 예에서 배워야 한다. 하나의 선종만을 운영하는 데서 오는 경영상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사업의 다각화를 재추진토록 하고, 선가가 낮은 지금 오히려 선박을 건조 또는 매입할 수 있도록 유도해 선사의 기초체력을 튼튼히 다지도록 하는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선사들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용선료 인하협상을 서둘러 매듭짓고 자구노력을 신속히 이행해 글로벌 해운업계의 ‘치킨게임’ 속에서 자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김인현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해법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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