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학업 중단하고 봉사·여행 통한 재충전 늘어
[ 마지혜 기자 ] 성균관대 통계학과 3학년 윤명지 씨(22)는 이달 말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제주도로 떠나기로 했다. 내년 본격적인 구직 활동을 앞두고 친구들은 어학시험 공부를 하거나 기업 인턴 등을 계획하고 있지만 윤씨는 ‘쉼표’를 택했다. 그는 “하루에 4시간 청소와 세탁 등의 일을 도우면 식사와 숙박을 무료로 할 수 있는 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 계획”이라며 “내가 원하는 일과 삶이 무엇인지 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이소현 씨(24)는 취업 준비 중이던 지난해 12월 남미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두 달간 남미 곳곳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이씨는 “취업 준비에 발버둥치는 나 자신이 싫어 한 번이라도 내 인생을 직접 지휘하고 싶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며 웃었다.
유례 없는 취업난 속에 ‘스펙 쌓기’ 열풍에서 한발 물러나 재충전 시간을 보내려는 청년이 늘고 있다. 이른바 ‘갭이어(gap year)족(族)’이다. 갭이어란 학업이나 직장을 잠시 중단하고 봉사나 여행 등을 하며 자아를 성찰하는 기간을 말한다.
교육·컨설팅기업 한국갭이어에 따르면 이 회사가 운영하는 갭이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 수는 2013년 991명에서 2014년 1987명, 지난해 2559명으로 2년 새 158% 급증했다. 이 회사를 통하지 않고 자체 여행을 떠나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갭이어족 규모는 한 해 1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갭이어족에는 취업 준비를 앞둔 대학생이나 본격적인 구직활동에 뛰어든 취업준비생이 많다. 한국갭이어 프로그램 누적 참가자의 33.7%는 대학생, 15.2%는 취업준비생이었다. 안시준 한국갭이어 대표는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감에 쫓기듯 살아오던 청년들이 회의감을 느끼고 진로는 물론 삶의 의미에 물음을 던지며 갭이어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반복적인 일상과 끊임없는 성과 경쟁 등에 지친 직장인도 갭이어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갭이어 누적 참가자의 28.5%는 직장인이었다.
한 외국계 대기업의 엔지니어 4년차이던 2014년 사표를 내고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외국에서 지내며 일과 관광 등을 하는 프로그램)’를 떠난 전용길 씨(32)도 그런 사례다. 그는 지난해 11월 한국으로 돌아와 교육과 운동을 좋아하는 적성을 살려 헬스 트레이너로 전업했다.
전씨는 “갭이어를 보내는 동안 내가 정말 살고 싶은 삶이 어떤 건지 많이 고민했다”며 “월급은 대기업 다닐 때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훨씬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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