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300만원 기본소득' 스위스 국민투표 부결

입력 2016-06-06 02:59  

스위스 국영방송 "유권자 77% 반대"

"비용 연 250조원 들어 경제에 악영향"
기본소득 논의 확산될 듯…핀란드선 일부 시행



[ 이정선 기자 ] 스위스가 전 국민에게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지급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5일 시행했으나 부결됐다. 스위스 국영방송 SRF는 이날 스위스 기본소득 도입안에 대한 국민투표 결과 76.7%가 반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압도적 표차로 부결

스위스가 국민투표에 부친 기본소득 도입 방안은 매달 18세 이상 모든 성인에게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 어린이·청소년에게 650스위스프랑(약 78만원)의 기본소득을 나눠주는 방식이다. 2013년 조건 없는 기본소득 도입을 처음으로 제안한 캠페인 단체(BIS)가 13만명의 서명을 얻어 성사시킨 이번 투표는 불평등 문제로 고심하는 모든 국가에서 사회적 이슈가 됐다.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인간의 존엄을 고취시키고 공공서비스를 촉진하기 위해 성인 기준 월 2500스위스프랑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월 2500스위스프랑은 스위스의 월 최저생계?2219스위스프랑)를 기준으로 산출한 금액이다.

반대여론이 60%를 넘는 가운데 지난달 9일부터 이달 4일까지 전자투표와 우편투표가 일부 이뤄졌으며, 이날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 동안 지역별로 투표가 진행됐다.

그동안 정부 등 반대론자들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경제를 악화시킨다고 비판해왔다. 스위스 정부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시행하는 데 연 2080억프랑(약 248조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현 정부지출 규모인 연 670억프랑의 세 배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스위스 국가위원회도 국민투표에 앞서 반대 157, 찬성 19의 의사를 밝혔다.

우파 성향의 스위스국민당(SPP) 소속 루치 스탬 의원은 이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스위스가 섬이었다면 이론적으론 가능할 수 있지만 스위스 국경은 열려 있어 완전히 불가능하다”며 “만약 모든 개인에게 돈이 지급된다면 수십억명의 사람이 스위스로 진입하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국민투표 결과가 예상대로 부결됐지만 세계에 미치는 파장은 작지 않을 전망이다. 기본소득 법안을 발의한 모임의 공동대표이자 대변인 다니엘 하니는 독일 일간 데어 타게스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통과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제비뽑기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번 투표는 중간 과정”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 찬반 논란 지속될 듯

기본소득 도입 논의는 로봇과 자율주행차 등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기술 발전으로 상당수 시민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단초가 됐다. 앤디 스턴 전 서비스노조국제연맹 위원장은 “자율주행 트럭이 나오면 미국에서 350만명의 운전기사가 실직할 것”이라며 “역사상 최대 실직난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갈수록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 문제도 기본소득 도입 움직임에 불을 붙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도입 논의는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핀란드는 올해부터 성인 1만명을 무작위로 골라 한 달에 550유로(약 72만원)를 주고 있다. 2년 동안 수급자의 노동 유인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등을 살펴본 뒤 확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네덜란드도 지방도시 위트레흐트 등 20개 도시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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