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부에서도 규제개혁이 실패로 끝날 모양이다. ‘손톱 밑 가시’니 ‘규제 단두대’니 했던 말의 성찬이 있었을 뿐이다. 대통령이 다섯 차례나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주재했고, 민간이 참여하는 규제개혁위원회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도대체 와 닿는 성과가 없다.
신산업의 경우는 네거티브 방식, 즉 원칙적으로 허용해 주고 안 되는 것만 명시하는 방식을 도입한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고 있는 곳은 없다. 지역을 정해 드론(무인항공기) 같은 특정 산업은 규제가 아예 없도록 하겠다는 ‘규제 프리존’ 계획도 관련 법이 20대 국회 들어 이제 재발의됐다고 하니 그 속도가 한심할 뿐이다.
'적극행정 면책' 실효 있겠나
규제가 안 풀리는 이유는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돼서도 아니고, 해당 장관들의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감사에 있다. 감사원 정책감사, 부처 자체감사, 국정감사 등 공무원들이 눈치 볼 감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감사 대상이 되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 금융계좌까지 조사받아야 할 때도 있다. 동료들도 ‘뭔가 있나 보다’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기도 한다.
공무원들은 정년까지 일하고 싶다. 연금도 받아야 한다. 승진을 안 해도 좋으니 징계만 피하자는 ‘위험 회피’는 어쩌면 합리적인 판단이다. 일선 공무원들이 이렇게 감사나 징계를 겁내 소극적으로 행정을 처리하는 것을 ‘행태규제’라고 부른다.
법에 있는 대로, 늘 해 오던 대로 하는 처리는 감사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법이 아직 없는 신산업에서 새롭게 인허가를 내주는 행위는 감사 대상이 된다. 이해관계자들이 많을수록 민원과 투서가 따르게 돼 있어 더욱 그렇다. 우버나 콜버스 같은 신산업 모델이 행태규제에 걸리는 논리가 꼭 그렇다. 기존 택시나 버스회사들이 엄연히 있는 상황이면 기존 사업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게 ‘안전’하다. 규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지시한 사항이어도 마찬가지다.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권의 핵심 사업이 오히려 주요 감사 대상이 된다. 4대강과 해외자원개발 감사를 보라.
공무원 위험회피 고착화될 뿐
공무원들의 ‘감사 포비아(공포증)’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 행정에 대해서는 해당 공무원들을 면책해 줘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 지시에 따라 제도는 마련됐다. 지난해 2월 감사원법 개정 때 ‘적극행정에 대한 면책’ 조항이 들어갔다. 구체적인 기준과 운영 절차를 담은 감사원 규칙도 정해졌다. 그러나 최소한의 구제 절차에 불과하다.
적극행정 면책의 기준을 보자. 공공의 이익을 위했을 것, 업무를 적극적으로 처리했을 것, 행위로 인해 결과가 발생했을 것, 사적인 이해관계가 없었을 것,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검토했을 것, 필수적인 행정 절차를 거쳤을 것, 필요한 결재 절차를 거쳤을 것 등이고 그 모든 것에 관한 소명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어디에도 공무원들이 ‘재량’을 발휘할 여지는 없다. 규제 완화 성과가 실패로 끝나면 구제받을 길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용기 있게 규제를 풀어줄 공무원이 얼마나 되겠나. 이왕 적극행정 면책이라는 대안을 마련할 것이었으면 본인들이 소명할 것이 아니라 장관이나 단체장 등이 업무 시행 단계에서 ‘적극행정 면책’을 선언하거나 보증하는 방법을 택했어야 한다. 그런 인센티브도 없다면 공무원들의 보신주의, 복지부동 등의 행태를 바꿀 길이 없을 것만 같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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