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 종로도서관장 >
바야흐로 여성시대의 막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에는 작가 한강이 영국의 맨부커상을 받는 등 재능 있는 여성들이 예술과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사회의 지도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여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지는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여성의 참정권 실현이 채 100년이 되지 않은 걸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지난해 노벨문학상은 여성작가가 쓴 여성들의 이야기에 돌아갔다. 벨라루스라는 낯선 땅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라는 여성이 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펼치면서 잠시 동안 고민에 빠졌다. 전쟁에 여자가 있었나?
천지가 창조된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전쟁을 반복했지만 그 전쟁의 역사에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기록된 것은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로만 한정하더라도 아마 왜장을 끌어안고 뛰어내린 논개나 행주산성에서 돌을 나르던 아낙네들을 떠올리는 정도일 것이다. 그만큼 인류사에서 가장 치열했고 처참했던 전쟁이라는 무대에 여성이라는 존재는 배제된 느낌이다.
책을 열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과 싸웠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책은 마치 흙먼지를 뒤집어쓴 전투복을,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간호복을 입은 각기 다른 여성들이 내게 찾아와 때로는 담담한 어조로, 때로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겪은 전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그 여성들에게 이 이야기들이 꺼내어 자랑하고 싶은 훈장이 아니라 가슴 한편의 비밀상자에 밀어 넣고 싶은 아픔으로 기록되는 것은 그녀들이 남자들에 비해 공이 없어서가 아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남자는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많은 반면 여자에겐 전쟁에 대한 감정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이 문학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알렉시예비치는 이 작품에서 일반적인 르포르타주, 즉 다큐멘터리 효과를 내는 단순한 취재와 보도에서 벗어나 여성, 특히 전쟁 속의 여성이라는 생소하지만 다룰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줬다. 역사의 기록을 넘어 인류가 고민해야 할 문제를 전해준 셈이다.
그렇다면 여성을 배우면 전쟁이 없어질까. 이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여성은 생명을 주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전쟁에서 흘린 수많은 피는 세상 모든 어머니의 고통과도 같다.
승리 아니면 패배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전쟁 자체가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조금만 귀를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긴다. 좋은 전쟁이란 것도 나쁜 평화란 것도 없다고 하지 않던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문학동네, 560쪽, 1만6000원)
김선희 < 종로도서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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