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박수진 기자 ] 지난 9일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은행 사무소에서 열린 토론회 자리였다. 현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관료와 경제학자, 기업인, 국제기구 종사자 등 10여명이 모여 미국 회계감사법을 주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도중에 한국의 구조조정으로 화제가 옮겨붙었다. 조용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화끈 달아올랐다.
경제학자 A씨는 “한국에서 조선·해운업계 구조조정 논의로 시끄러운데, 웬 갑작스런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회계를 하는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해당 회사 부실을 이제서야 새로운 사실인 것처럼 들춰내 호들갑을 떠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지적이었다.
기업인 B씨는 “해외 근무할 때 대우조선해양에 다니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본사에서 주는 학자금 지원에 한도가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정부가 그런 회사를 살리겠다고 혈세를 쏟아붓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회계사 출신인 C씨는 “회계법인에 들어가 부실회사에 감사를 나간 첫날 이중장부를 발견했다”며 “상사에게 보고했더니 상사는 입을 다물라고 했고, 해당 업체 임원들은 그날 낮부터 술잔치를 마련했다”고 회고했다. 그런 관행이 싫어 한국을 떠났다고 털어놨다.
정부에 대한 비판도 빠지지 않았다. 역대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임기 때만 문제가 터지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폭탄 돌리기’를 했다는 주장이었다.
이날 결론은 “한국이 그동안의 위기를 통해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어느 날 돌연히 부실의 심각성을 얘기하고, 정부는 은행을 내세워 구조조정을 시작하고, 검찰은 부실책임을 묻는다며 수사에 나서는 등 ‘사후약방문’식 대응에만 열을 올린다고 이들은 비판했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황석윤 미국 스탠튼칼리지 교수(회계학)는 “기업과 회계법인, 정부가 서로 모른 척 숨긴 부실은 결국 더 큰 부담이 돼서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 이제부터라도 사전 대응으로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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