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라면 연구개발실 이석재 연구원
우린 상상의 맛 창조자
라면 하루 30번 시식하며 연구
신제품 영감 얻으려 맛집 탐방
연구원 다수는 식품학과 출신
화학·유전공학 관련 전공자도
채용 때 개발자 열정 가장 중시
[ 공태윤 기자 ] 시판 한 달 만에 600만봉 판매, 출시 첫해 매출 1000억원, 누적판매량 1억봉….
작년 4월 출시된 이후 라면업계의 기록을 잇따라 갈아치운 ‘짜왕’의 힘이다. 짜왕 돌풍 뒤엔 농심 라면 연구개발실 스프개발 연구원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이석재 농심 라면스프개발 연구원(41·서울대 식품공학과 졸업·사진)은 “정통 중국요리집에서 먹는 짜장면과 비슷한 짜장라면을 개발하기 위해 2년간 100여차례 도전한 끝에 정통 짜장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스프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13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있는 농심 본사를 찾았다. 라면 연구개발실이 있는 도연관 5층에 들어서자 라면스프 냄새가 입맛을 자극했다. 라면 연구개발실엔 다양한 육류, 해산물, 야채 등으로 만든 분말 및 건더기 형태의 원료와 고춧가루, 청양고추 등의 향신료를 담은 원료통이 줄지어 있었다.
이 연구개발실에서 취급하는 라면스프의 원료는 수천 가지에 달한다. 농심 라면 연구개발실은 면, 스프, 별첨(건더기)개발팀과 녹산면(건조면)개발팀, 해외제품개발팀, 식품안전연구소 등으로 구성된다. 연구원은 모두 120여명으로, 식품영양학 식품공학 등을 전공한 연구원이 많다.
짜왕은 200도 이상 고온에서 짧은 시간에 재료를 볶는 고온 쿠킹 기술 등을 적용해 “정통 짜장의 풍미와 먹는 느낌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연구원은 “1000원대 가격으로도 시중 5000원짜리 짜장면의 맛과 향을 재현해보고 싶었다”고 개발 의도를 설명했다.
스프개발 연구원의 업무는 돼지고기, 감자, 양파 등으로 라면에 들어가는 1차원료를 배합하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짜왕 봉지 분말스프 18g에는 20여종의 원료가 들어간다”며 “1차원료 배합으로 최상의 맛을 구현해야 하는데 생각했던 맛과 다르면 처음부터 다시 원재료 배합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프개발 연구원을 ‘상상의 맛을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짜왕의 불맛을 살리기 위해 고온에서 조리하면서 조리기구를 수없이 태운 얘기도 들려줬다.
스프개발 연구원의 하루는 라면 시식으로 시작한다. 미각이 가장 예민한 오전에 출근하자마자 어제 개발한 라면, 최근 시장에서 호평받은 라면 등을 시식하면서 팀원끼리 맛과 향을 평가한다. 이 연구원은 “먹는 양은 다르지만 하루평균 30번을 먹는다”고 말했다. 점심식사 등으로 미각이 둔해진 오후에는 다양 ?원료로 새로운 스프를 개발한다.
그는 “천부적인 미각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지만 맛을 느끼는 능력은 훈련으로 강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많이 자주 먹으면서 느끼고 상상해 새로운 맛을 구현해내려는 열정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프개발 연구원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맛집탐방이다. 이들은 맛집을 찾아다니며 알게 된 비법으로 요리를 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한다. 이 연구원은 “신제품 개발의 영감을 얻고자 전국 맛집을 틈만 나면 동료들과 함께 다닌다”고 설명했다. “맛집소개 TV 프로그램을 본 뒤 그 집을 방문하는 것도 업무의 연장”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인공지능(AI)이 아무리 발달해도 AI가 절대 스프개발 업무를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사람 입맛은 제2, 제3의 또 다른 맛을 창조합니다. 남녀노소에 따라 다른 입맛, 기분에 따라 다른 입맛, 인종에 따라 다른 입맛을 구분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인사담당자 팁
농심은 연구개발(R&D)직 채용 때 별도의 프레젠테이션(PT) 면접을 치른다. 석사는 논문초록, 학사는 재학 중 수행한 연구 프로젝트, 또는 개발해보고 싶은 제품 등을 발표한다.
이를 통해 연구에 대한 열정, 깊이 등 연구원으로서의 자질을 평가한다. 라면 연구개발실 연구원 중 학사와 석·박사 비중은 4 대 6이다. 차윤혜 농심 인사팀 과장은 “채용 과정에서 연구개발자의 열정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며 “학위 구분 없이 채용하고 있으니 대졸자들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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