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신랑의 대리운전 전국투어
가보지 않은 길 걷는 '카카오드라이버'
"'무엇이 가장 어려웠느냐'가 제일 어려운 질문"
아이를 낳는 기분.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모바일 서비스를 처음 세상에 선보일 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스마트폰 속 앱들은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왜 태어났을까. 세상에 아무렇게 쓰는 앱은 있어도 아무렇게 만들어진 앱은 없다. 'Why not(왜 안돼)?'을 외치는 괴상한 IT업계 기획·개발자들. [박희진의 괴발개발]에서 그들의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1. "똥콜, 길빵, 손이 뭔지 아세요? 인터넷에 검색해도 안나와요. 대리운전 업계 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거친 기사님이 많아서 처음엔 무슨 뜻이냐고 되묻기도 힘들었어요."
10여년동안 책상에서 온라인 서비스만 만들던 김태현 매니저(36)를 대리운전 업계는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았다. 난생 처음 듣는 그 세계 용어는 난해하고 아리송했다.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 팀원들과 스터디를 하고 '카카오드라이버 용어집'을 만들었다.
#2. "장인어른이 의심하셨다니까요. 너무 자주 지방에 내려간다면서. 출장가서 한 일은 대리운전 기사님들이랑 커피 마시고, 저녁에 '맨정신'으로 대리운전 불러 타는 게 전부였는데 억울했죠.(웃음)"
유재현 매니저(35)는 카카오드라이버 기사 회원들과 친분이 각별하다. 반년동안 신혼 생활도 반납하고 '대리운전 전국투어'에 올인한 덕분이다.
#3. "저흰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에요. '이게 맞을까'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수백번 물어봤습니다. 기존과 전혀 다른 새 방식을 제시해야 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게 없었죠."
카카오드라이버 개발을 총괄한 안규진 팀장(40·사진)은 '무엇이 가장 어려웠느냐'는 질문에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서비스 기획 단계부터 지금까지도 어려움의 연속이라고 그는 털어놨다.
세 사람은 지난해 5월 카카오드라이버팀에서 만났다. 모바일 대리운전 호출 서비스를 만드는 게 이들의 임무였다.
김태현, 유재현 매니저가 팀에 지원한 것은 '카카오택시' 영향이 컸다. 카카오의 첫 번째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인 카카오택시가 자리잡는 것을 보면서 '대리운전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생활 영역에서 기회를 찾자'던 정주환 카카오 O2O 부문 총괄 부사장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솔직히 카카오택시 준비 과정을 보면서 긴가민가했어요. 사람들의 서비스 사용 패턴을 바꾸는 게 쉽지 않거든요. '과연 될까' 했는데 되더라고요. 주변 사람들도 만족해하며 쓰는데 신기했어 ? 그러면서 서비스 사용자와 제공자의 불편함을 모바일로 개선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습니다."(김 매니저)
세 사람은 O2O 서비스의 경우 변화를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와 보람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주변에서 들리는 '써보니 편하더라, 좋더라'가 이들의 원동력인 셈이다.
출발은 좋았지만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한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튀어나오는 식이었다. 업계 전문가도, 기존 데이터도 없었다. 정보를 수집해 새 기준을 정립하고 업계를 설득하는 일 모두 카카오의 몫이었다.
처음 4개월은 전국에서 무작정 대리운전을 불러 탔다. 목적지는 그 지역의 가장 외진 곳. 술 한 잔 안하고 한 곳에서만 수십번을 탔다. 지역별로 요금 체계와 정책, 업계 관행엔 차이가 있었다. 기사들이 불만을 느끼는 부분도 조금씩 달랐다. 공통된 불만 사항을 서비스에 우선 반영하기 위해 전국 대리운전 기사들을 초청해 수차례 토론과 인터뷰도 진행했다.
"저녁 7~8시 즈음 번화가 편의점 근처를 한 번 보세요. 삼삼오오 모여 휴대폰만 보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대리운전 기사님들이에요. 일부 유흥가 근처에 보이는 천막에도 기사님들이 대기하고 있어요. 기사님 길거리 캐스팅을 주로 제가 맡았었기 때문에 잘 알죠."(유 매니저)
특히 민감한 부분인 가격과 수수료, 보험 정책을 세우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통상 운행요금의 20~40% 수준인 수수료를 중개 업체에 낸다. 여기에 연평균 100만원 정도의 보험료를 가입 업체 당 별도로 내야 한다.
카카오드라이버는 업계 최저 수준인 수수료 20%를 받고 보험료도 단체보험을 통해 대신 부담한다. 기본요금은 1만5000원. 요금은 거리와 시간을 병산한 자체 앱미터기를 도입했다. 거리와 시간에 따라 1000원 단위로 실시간 책정된다.
"보수적인 보험사를 설득하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어요. 대리운전 업계에서 볼 수 없던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보험 정책이었거든요. 시장이 수긍할 수 있는 미터기 개발과 당일 정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도 힘들었습니다. 카카오드라이버는 인력으로 보나, 적용된 기술로 보나 지금까지 카카오 O2O 사업 중 최대 규모입니다."(안 팀장)
이제 출시 보름을 넘긴 카카오드라이버는 이들에게 단순히 재밌는 업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서비스가 나오는 데 전국 대리운전 기사들의 도움이 컸던 만큼 보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현장에서 직접 본 업계의 부당한 관행에 의미있는 변화가 나타날 때 까지 계속 힘쓰고 싶다는 게 그들의 얘기다.
"60대 기사 회원 한 분이 첫 호출을 받고 저한테 연락을 하셨어요. 이렇게 좋은 호출을 받는 건 처음이라 눈물이 나셨대요. 그동안 말도 안되게 싼 가격에 안좋은 지역 호출만 들어왔다면서요. 이런 말 좀 어색한데 일을 할 수록 사명감을 느낍니다."(유 매니저)
"어떤 기사님은 면접장에 6살 딸의 손을 잡고 오셨어요. 아이가 문밖에서 초코우유를 먹으며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데 계속 눈길이 가더라고요. 알려졌듯이 대리운전 기사님들 중엔 생계가 어려우신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그 분들이 정당한 대접을 받으면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김 매니저)
서비스 출시 이후 더 바빠졌지만 기사들과의 스킨십을 게을리 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그랬듯 현장 얘기에 귀기울이고 최대한 빨리 서비스에 반영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팀원 40명 전원은 기사용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통해 하루에 수백건씩 들어오는 건의 사항을 카카오톡으로 받아본다. 정기적으로 5명의 기사 회원을 불러 포커스그룹인터뷰(FGI)도 진행한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다보면 생각지 못했던 돌발 변수가 많아요. 그 때마다 빠른 의사결정과 대응이 필요합니다. 사실 이건 카카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인력과 자원이 많은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죠. 카카오드라이버가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다면 향후 카카오 O2O 사업의 바로미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안 팀장)
"처음엔 대화를 꺼리던 기사님들이 이제는 동료들을 인터뷰에 데려오세요. 지금은 저희도 기사님들과 대화하는 데 아무 문제 없죠. '똥콜'은 운행 가격이 비합리적인 대리운전 호출을, '길빵'은 길에서 대기 중인 대리운전 기사를 잡아 타는 걸 말해요. '셔틀'이란 말도 있어요. 목적지가 외진 곳일 경우 나오기가 힘드니까 2인1조로 한 명이 다른 차를 타고 손님차를 따라가는 거에요. 대리운전 중개 업체가 제공하는 서비스 개념이에요. '손'이요? 그냥 손님을 그렇게 부르더라고요.(웃음)"(김 매니저)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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