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가 뭐길래] “청산”은 말뿐…끈질긴 생명력 과시하는 계파 정치

입력 2016-06-17 15:10   수정 2016-06-17 15:18

[홍영식의 정치가 뭐길래]

“청산”은 말뿐…끈질긴 생명력 과시하는 계파 정치

이념적 잣대와는 거리…국가 이익보다 내 공천이 더 중요

보스에 줄 서고, 보스는 앞날 챙겨주는 ‘담합 정치’



새누리당이 지난 10일 20대 국회의원 워크숍을 갖고 계파 해체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 뒤 새누리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들을 보면 계파 해체는 말 뿐이었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지난 16일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유승민·윤상현 의원 등 7명의 탈당파에 대한 전격적인 일괄 복당 허용은 친박근계와 비박간 갈등을 촉발했다.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은 시간을 두고 결정하자고 주장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퇴 시사까지 했다. 당 내분으로 당·정·청 회의까지 취소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갔다.

◆말뿐인 계파 해체 선언

말 뿐인 계파 해체 사례는 이 뿐만 아니다. 계파 청산 선언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의 모든 일들의 중심엔 여전히 계파 갈등이 존재한다.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를 계기로 만들고 있는 ‘국민백서’를 두고서도 계파간 싸움이 재연됐다. 비박계는 발간 전이라도 내용을 조속히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친박계는 반대했다. 내달 9일 예정된 전당대회 전 ‘친박계 책임론’이 다시 불거질까 염려해서다. 총선 패배의 원인을 따지다만?공천을 주도한 친박 쪽에 책임이 더 많이 실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백서 문제로 인해 계파 갈등을 다시 촉발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계파 해체 선언 사흘만에 실시한 당내 20대 국회 상임위원장 경선은 ‘계파 투표’로 이뤄졌다. 조경태 의원은 지난 13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서 예상을 깨고 당선됐다. 조 의원은 114표 중 70표를 얻었다. 투표 전만 하더라도 3선의 경제통 이혜훈 의원과 이종구 의원의 양자 대결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빗나갔다.

당내에서는 친박계가 유승민계 이혜훈 의원을 당선시키지 않으려는 차원에서 조 의원에게 표를 던졌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안전행정위원장 경선에서도 친박계 유재중 의원이 옛 친이계 박순자 의원과 중립 성향의 이명수 의원을 꺾었다.

◆계파 정치의 역사

계파 정치는 한국정치를 좌지우지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는 한동안 정계를 양분한 거대 정치세력이었다. 현재 여야 계파의 뿌리이기도 하다. 현재의 계파와 차이는 군부 시절 조직적인 저항을 위해 뭉친 측면도 있었다.

새누리당에서는 2007년 대선 경선을 앞두고 친박-친이 분화가 일어났다. 야권의 친노무현계-비노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대립 관계하기 시작했다. 친노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2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뒤 “계파의 ‘ㄱ’자도 나오지 않겠다”고 했으나 친노계는 여전히 더민주의 주도세력이다. 8월27일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누가 대표로 당선되느냐는 최대계파인 친노계, 좁게는 친문재인계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는게 더민주 내 중론이다. 벌써부터 친문계가 특정 당권주자와 손을 잡았다는 설이 돌고 있다.

◆계파 폐해…공익보다 공천 등 사익 우선

게파 정치의 폐해에 대해 끊임없는 비판이 가해져도 뿌리 뽑히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계파 정치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다만 무엇이 목적이냐에 따라 다르다. 이념적, 정치적 소신에 따른 정치적 결사체라면 정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책을 비롯한 다양한 현안에 대해 정치적 시각, 이념에 따라 토론이 이뤄지고 생산적인 결론을 도출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문제는 한국의 계파정치는 국가 이익보다 계파 이익이 우선한다는 데 있다. 이른바 파벌, 패거리 정치라는 것이다. 하나의 이념이나 가치를 지향하기 보다는 공천을 따기 위한 것 등 실질적인 이해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정책이나 철학 보다는 사람중심으로 움직이는게 한국 정치의 특징이다. 이념적 잣대로 계파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생산적인 노선 투쟁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

정치권에선 “국회의원에게 정권 창출보다 중요한 것은 공천”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친이계가 친박계 공천 학살을 했고, 2012년엔 반대로 친이계가 보복을 당했다. 공천을 따기 위해, 반대로 낙천을 당하지 않기 위해선 계파는 든든한 울타리가 된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자신이 속한 새누리당을 일종의 이익집단이라고 규정했다. 홍 지사는 “새누리당은 보수적 가치를 실현하려고 하는 적극적인 집단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보수를 가치로 그것을 실현하려는 정당이라기 보다는 국회의원 한번 해야겠다는 이익개념으로 모인 집단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계파 청산이고 뭐고 이야기 하는 것은 결국 이익집단 개념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윤선 새누리당 혁신비대위원은 “계파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계파가 단지 공익을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본다”며 “그런데 그 계파라는 것이 내가 어떻게 해야 선수(選數)를 더 많이 쌓을 수 있는가 하는, 그래서 내가 누구랑 점심을 먹어야 하지? 이런 고민에 빠진 사람들이 더 많은 것 아니었느냐”고 했다.

◆보스에 충성하고, 보스는 공천 챙겨주고…

계파 정치의 또 다른 폐해는 1인 보스만 쳐다보는 것이다. 능력 보다는 보스에게 줄을 서 정치적 앞날을 보장받는 구조다. 한번 보스가 되면 당은 자신의 사유물이나 다름없다. 이러다 보니 공정한 시스템에 의한 당 운영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1인 보스의 말이 곧 헌법이다. 보스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보스는 계파 의원의 미래를 책임지는 식이다. 일종의 담합정치다. 이런 상황에서 보스의 말을 거스르는 것은 ‘역적’이나 다름없다. 소신은 배신으로 낙인 찍힌다.

다수 계파의 뜻과 반대되는 목소리는 수용되기 어렵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 수정·보완 주장을 했다가 주류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다. 최운열 더민주 의원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고용을 늘리는 수단이라고 했다가 역시 주류의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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