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마진 배럴당 4.6불로 '뚝'
고도화 설비·수입 다변화 등
정유업계, 경쟁력 강화 나서
[ 송종현 기자 ] 정유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실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에서 제품 생산에 투입한 비용을 뺀 것)이 급락하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란 악재까지 겹쳤다. “브렉시트가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이어질 경우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재고 평가손이 증가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알래스카의 여름’ 끝나나
정유업계가 2014년 하반기 글로벌 유가 급락의 ‘악몽’에서 벗어나 실적이 급격히 나아지던 작년 5월.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의 정철길 부회장은 “지금의 호황은 알래스카의 짧은 여름 같은 것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길고 혹독한 겨울이 시작되기 전 반짝 찾아오는 여름처럼 오래가지 않을 호황’이라는 의미였다.
정 부회장이 이런 전망을 내놓은 이후에도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작년 한 해 총 4조7319억원, 올 1분기에 1조8372억원을 벌어들였다. 업계에서는 “알래스카의 여름이 너무 긴 것 아니냐. 정 부회장의 예상이 틀렸다”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2분기 들어 정유업계 관계자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정유업계 실적을 좌우하는 정제마진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작년 5월 사상 최고 수준인 배럴당 10.98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는 작년에 정유 4사가 뛰어난 실적을 올린 가장 큰 요인이었다. 올 들어 1월까지만 해도 배럴당 10.2달러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던 정제마진은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다.
지난 6월엔 배럴당 4.6달러까지 주저앉았다. 정제마진이 이처럼 급락한 이유는 작년과 같은 폭발적 수요 증가가 더 이상 이뤄지지 않는데 공급은 급격히 늘어나서다.
중국 산둥성 일대에 몰려 있는 ‘찻주전자 정유사(teapot refinery:하루 정제 처리량 10만배럴 수준의 소규모 정유사)’들이 석유제품 수출을 대폭 늘리면서 중국발(發) 공급 과잉이 심해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1분기 전체 석유제품 수출량은 전년 동기 대비 79.3% 증가했다.
◆겨울나기 준비하는 정유업계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2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업계 추정치 평균)는 각각 8306억원과 4841억원이다. 전년 동기보다 각각 27.0%와 15.9% 작은 규모다.
국내 정유업계는 ‘겨울나기’ 준비에 들어갔다.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본업인 정유업의 경쟁력 강화다. 정유사들은 벙커C유 등 저가 원료를 넣어 휘발유 경유 등 수요가 많은 고가 제품을 생산하는 고도화설비 투자를 잇따라 하고 있다.
2011년 일찌감치 총 2조5000억원을 투입해 고도화 생산설비를 마련한 현대오일뱅크는 2018년까지 5000억원을 추가 투자한다. 업계 최고 수준인 39.1%의 고도화율(일반설비의 정제능력 대비 고도화설비의 정제능력)을 40% 중반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원유 수입처 다변화와 유연한 의사결정 시스템 도입을 통해 급변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50여년간의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유 4사 중 가장 많은 100종 이상의 원유를 수입하는 SK이노베이션이 대표적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올 들어 중동산에 비해 값싼 아프리카, 호주 등의 유종 수입을 늘려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 서방의 경제 제재가 풀린 이란산 원유 도입도 크게 확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번째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석유화학 등으로 확장해 원유가격에 따라 출렁이는 실적 변동성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다. GS칼텍스는 파라자일렌(PX) 등 석유화학 제품 생산 비중을 늘리고 있다. 에쓰오일은 최근 울산에서 폴리올레핀(PO) 등을 생산하는 온산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이 회사는 온산공장 건설에 2018년까지 총 4조8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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