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 실정법상 처음규정된 것은 그 유명한 권리장전에서였다. 영국 역대 왕조 국왕과 하원의원들 간의 오랜 투쟁은 1688년 명예혁명으로 끝을 맺었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1689년 권리장전이다. 권리장전 제9조는 ‘의회에서의 발언과 토론, 의사절차의 자유는 의회 밖의 어떤 재판소에서도 소추되거나 심문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정 헌법 차원에서 의원 면책특권을 처음 명문화한 것은 1787년 미국 연방헌법이다. 이후 1791년 프랑스 제헌헌법, 1849년 프랑크푸르트 헌법초안 및 1919년 바이마르 헌법 등에 규정됐고 2차대전 이후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 다수 입헌 민주국가 헌법에서 명문화됐다. 우리나라 헌법 제45조도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해 면책특권을 명문화하고 있다.
각국의 면책특권 규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하지만 내용은 부분적으로 차이점이 있고 이에 대한 법원의 해석도 조금씩 다르다. 미국에서는 의원뿐 아니라 때로는 의원 보조자에 대해서도 이를 인정한다. 의원에 의해 수행됐다면 면책조항으로 보호될 만한 행위일 경우 의원 보좌관에게도 适ㅗ求?식이다. 다만 의원의 행위도 입법적 행위, 정치적 행위로 나누어 후자에는 인정하지 않는 판례가 많다.
명예훼손까지도 면책특권에 해당하는지는 나라마다 다르다. 독일은 특이하게 비방적 모욕행위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는 명문 조항은 없지만 명예훼손도 면책특권 대상으로 인정한다. 일본에서는 학설과 판례가 나뉘어 있으며 국내에서는 중대한 명예훼손이 아닌 한, 면책대상이라고 보는 게 다수설이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면책특권 남용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성추행 전력이 있는 사람이 대법원 양형위원으로 위촉됐다”고 실명까지 거명하며 폭로했으나 이내 허위 사실로 밝혀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면책특권을 제한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희옥 새누리당 혁신비대위원장은 “무책임한 폭로나 허위사실 유포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면책특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조 의원을 겨냥했다. 야당 측에서도 남용 제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독일처럼 명예훼손은 제외하자는 주장도 있다.
20대 국회가 얼마나 특권을 내려놓을지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큰 기대는 금물이다. 용두사미로 끝난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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