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국, 하지만, 방국봉…. 법원에 개명을 허가해 달라고 신청된 이름이다. 부모가 자녀 이름을 지어줄 때는 잘되라는 뜻으로 지어줬겠지만 정작 그 이름으로 불리는 본인은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름의 주체가 스스로 자기 이름을 짓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흔하다.
법원은 오래전에는 사회적 혼란을 염려해 엄격한 원칙을 적용했다. 큰며느리와 이름이 같아 불편해도 개명할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한 적도 있다. 1990년도의 일이다.
그러나 2005년 이후에는 개명 허가 여부를 결정할 때 이름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와 기능, 개명을 허가할 경우 초래될 수 있는 사회적 혼란과 부작용 등 공공적 측면뿐만 아니라 개명 신청인 본인의 주관적 의사와 개명의 필요성, 개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와 편익 등 개인적인 측면까지도 충분히 감안하고 있다. 이름은 통상 부모에 따라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그 과정에서 이름의 주체인 본인의 의사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따라서 본인이 그 이름에 대해 불만을 가지거나 그 이름으로 심각한 고통을 받은 경우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그리고 구체적으로 자기결정권 측면에서 위와 같은 법원의 완화된 입장은 매우 바람직하다.
다만 최근에는 법원의 완화된 입장을 악용해 이를 상업적인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불순한 목적으로 신청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불경기로 살기 힘들거나 신병이 생기면 이를 이름 탓으로 돌려 개명을 부추기는 작명소도 있고, 불안한 마음에 두 번, 세 번 개명을 신청하는 심약한 사람도 있다.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과거의 범죄 흔적을 세탁하기 위해 혹은 신용불량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부동산 사기범들이 부동산 소유자로 행세하기 위해 등기부상의 소유자 이름으로 개명한 뒤 소유자인 양 매도계약을 체결하는 데 나타나기도 한다. 외국에서 성매매 혐의로 추방당한 한국 여성이 다시 해당 국가의 비자를 발급받을 목적으로 이름을 개명하는 사례도 보고된다.
법원에서는 이런 사정을 꼼꼼히 살피기는 하지만, 당사자가 그 사정을 알리지 않고 숨겨버리면 사실을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이 이름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고 우리의 또 다른 자아다. 부모님이 지어준 소중한 이름을 탓하지 말고, 나의 이름을 걸고 나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자. 우리는 일제의 창씨개명정책에 목숨을 걸고 저항한 자부심 있는 민족이 아니던가.
이태종 < 서울서부지방법원장 kasil@scourt.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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