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의 괴발개발] 아현동 학원가 수상한 잡상인들…"선생님 일단 써보세요"

입력 2016-07-06 14:23   수정 2016-07-06 18:42

학원가 서성이던 만삭 여성 정체는?
워킹맘 아이디어로 시작한 '유니원'

서비스 개발은 현재 진행형
"도화지에 밑그림부터 그려나가는 재미"




아이를 낳는 기분.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모바일 서비스를 처음 세상에 선보일 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스마트폰 속 앱들은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왜 태어났을까. 세상에 아무렇게 쓰는 앱은 있어도 아무렇게 만들어진 앱은 없다. 'Why not(왜 안돼)?'을 외치는 괴상한 IT업계 기획·개발자들. [박희진의 괴발개발]에서 그들의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 "원장님~"

헐렁한 티셔츠에 후줄근한 바지, 백팩, 슬리퍼 차림의 여자가 아현동 보습학원 문을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풍기는 분위기가 영락 없는 잡상인이다.

"안 삽니다. 안 사요."

다음날 여자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명함과 회사 소개서를 들이밀며 막무가내로 자리에 앉는다. 'NHN엔터테인먼트 유니원사업팀장 박범진'. 가까이서 보니 만삭의 몸이다.

박범진 팀장(34)은 두 아이의 엄마이자 경력 10년차 베테랑 개발자다. 오랫동안 정보기술(IT) 업계에 몸담았지만 '유니원'을 맡기 전까지 명함 한 통을 다 써본 적이 없다.

"주변에 명함을 안 만드는 개발자도 꽤 있어요. 외부 사람 만날 일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것도 서툴러요. 저도 문전박대에 잡상인 취급까지 당해보고 나서야 서랍 구석에서 명함을 찾았으니까요."

학원 운영·관리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인 유니원은 NHN엔터테인먼트 워킹맘들의 아이디어였다. 2015년 4월 외주 개발자들과 첫 발을 내디딘 유니원은 이후 태스크포스(TF)를 거쳐 9개월 만에 정식 사업팀을 갖게 됐다.

박 팀장은 진은숙 NHN엔터테인먼트 기술본부 총괄이사와 함께 아이디어 구상 시기부터 함께한 멤버다. 이후 주전공인 개발은 물론 기획, 영업까지 사업 구석구석 손을 안댄 부분이 없다. 지난 3월 둘째 아이를 낳고는 3개월 만에 회사로 돌아왔다.

"유니원은 학부모들과 학원 선생님들 간 소통 플랫폼이기도 해요. 출결, 학원비 수납, 알림장, 셔틀버스 위치 등 저 같은 엄마들이 학원에 궁금한 점들을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죠. 선생님들은 학부모와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오는 부담을 덜고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아하세요."

유니원은 NHN엔터테인먼트 개발자들의 손을 거쳐 지난해 6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같은해 9월 박 팀장을 필두로 유니원 앱(응용프로그램)개발 TF가 꾸려졌다.

5층 5번 회의실. 5년차 개발자 신승엽 전임(32)은 TF 시절을 이렇게 기억했다. 4명의 TF 팀원은 매일 경기도 분당 NHN엔터테인먼트 사옥 5층 5번 회의실로 출근해 머리를 맞댔다. 배정된 사무실도 없었고 인력도 부족했다.

직군에 상관없이 팀원 모두가 동네 보습학원부터 대형 프렌차이즈 학원까지 가리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 유니원을 알리고 학원 선생님과 학부모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영업 직군은 '빨리빨리', 개발 직군은 '천천히'가 몸에 배어있어요. 개발자들이 영업이나 기획 담당자로부터 현장 얘기를 전해듣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 같아요. 신기하게도 직접 선생님, 학부모들을 만나고오면 누가 독촉하지 않아도 서두르게 돼요. 사용자들에게 어떤 부분이 얼마나 간절한지 피부로 느끼거든요."(신 전임)

교육 업계를 경험한 젊은 피도 수혈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박주현 전임(30)은 교육 업계에서 제법 잔뼈가 굵다. NHN엔터테인먼트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교육 콘텐츠 업체와 학원에서 기획 업무를 맡았다.

"IT 강국이라는 한국에서 IT와 가장 친하지 않은 곳 중 하나가 교육 산업이라고 봐요. 인터넷 강의 같은 콘텐츠를 빼면 사실상 교육에서 IT가 제대로 자리잡은 분야는 없는 것 같아요. 몇몇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유니원과 비슷한 서비스를 내놨다는 사실도 이직 후에야 알았어요."(박 전임)

국내에선 지난해 말부터 '에듀테크'와 교육 O2O 붐이 불기 시작했다. 이제 막 문을 연 교육 O2O 시장에서 세 사람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다. 새로운 서비스와 변화를 경계하는 선생님, 스마트폰 사용이 서툰 원장님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어떤 원장님은 새벽 1시에 로그인을 못하겠다며 전화를 하셨어요. 학원 업무가 보통 밤 10시가 넘어야 끝나서 그 때 전화받는 건 익숙해요. 요즘엔 유니원을 써보고 싶다고 먼저 전화를 하는 학원도 있어요. 한 번은 그런 전화를 제가 받았는데 알고보니 전에 근무하던 학원 담당자여서 반갑고 놀라웠죠."(박 전임)

완성되지 않은 그림이란 점에서 유니원은 이들에게 더 각별하고 즐거운 일이다. 박 팀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흰 도화지에 밑그림부터 그려나가는 재미"다.

"유니원을 NHN엔터테인먼트의 키(Key) 서비스로 만들고 싶어요. 네이버하면 검색, 카카오하면 카카오톡이 떠오르는 것처럼요. 회사에서 개발 일을 하다보면 이미 자리를 잡은 서비스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아요. 저 역시 그랬고 늘 갈증이 있었어요. 유명한 서비스를 '내가 처음 만들었다'라고 말하고 싶은 욕심, 개발자라면 누구나 있을 겁니다. "(박 팀장)

유니원의 개발은 현재 진행형이다. 오는 9월께 또 한 번의 변신을 준비 중이다. 서비스 활용 주체를 학원에서 학부모까지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기능을 추가할 예정이다.

"유니원을 사용하고 싶은데 아이의 학원이 가입돼 있지 않아 못 쓴다는 학부모들의 얘기가 많았어요. 지금까지 유니원의 타깃이 학부모보다는 학원 쪽이었던 것도 맞아요. 오는 9월쯤이면 학원과 학부모 모두 자유롭게 유니원을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달라진 유니원 기대하셔도 좋아요."(신 전임)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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